[앙리 마티스, <초록의 선> 1905]
마티스가 <모자를 쓴 여인>을 그리고 나서 불과 몇달 후에 그린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이다. <모자를 쓴 여인>과 이 그림을 비교해 보면 <초록의 선> 역시 강한 보색 대비를 사용하고, 색채의 자율성을 주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모자를 쓴 여인>이 야수파란 이름에 걸맞게 충동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색채와 산만한 구성을 보여준다면, 이 그림은 상당히 잘 정돈된 느낌이다. 구성이 훨씬 안정감있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구성을 견고하게 해 주고 형태를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색채이다. 이 그림에서 마티스는 전통적인 명암법이나 원근법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색채대비를 통해 훌륭하게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티스 부인의 얼굴 중앙을 가로지르는 초록색의 선이다. 이 대담한 선으로 마티스는 코의 입체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림 전체에 균형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림이 초록의 선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마티스 부인의 얼굴은 초록의 선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 쪽의 색이 다르다. 햇빛을 받는 쪽은 보다 경쾌한 색으로, 반대쪽은 그늘진 색으로 칠해져 있다. 바탕색을 보면 왼편의 주황색은 대상을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오른편의 차가운 녹색은 대상을 뒤로 물러나 보이게 한다. 마티스는 이 그림을 기점으로 야수파의 즉흥성을 탈피하고 견고한 구성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앙리 마티스 1869~1954
1869년 프랑스 동북쪽에 있는 카토 칸브레지 지방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뒤늦게 예술가로서 출발한다. 그는 파리에서 몇 년 동안 법률을 공부한 두 법률 사무실의 서기가 된다. 그러던 중 그는 1890년 맹장 수술을 받고 요양생활을 하는데 이 때 회복의 따분함을 잊게 하기 위해 어머니가 선물한 물감 상자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마티스가 미술 학교에서 귀스타브 모로를 알게 되고 모로의 도움으로 1895년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게 된다. 1905년 인상주의가 잃어버린 구성의 단단함을 그림에 복귀시키려던 세잔의 영향과 고갱, 고호의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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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시냑의 분할주의 영향을 계기로 야수파로 가는 정점을 맞이하게 되어 색채가 선으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되면서 그림은 상이한 두개의 구성이 중첩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1907년과 1909년 사이의 회화 수업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색채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대상과 그림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림 안에서의 색채 간의 관계"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야수주의 시기는 마티스 전 생애에서 아주 잠깐에 불과하지만, 이 시기의 주관적이고 자율적인 색채의 확립은 야수주의 시기 이후 장식적이고 단순화되어가 는 색채의 길로 접어들도록 해주었다 1907년 이후 마티스의 그림은 야수주의 시기의 거친 터치와 명암이 사라지고, 끊임없는 새로운 화법의 실험결과로 마티스는 마침내 '회화에 있어서 필요치 않은 요소는 해로운 것'이라는 신념아래 단순성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것은 마티스의 야수파적 실험이 야기한 '방법의 순수성'이 더욱 단순화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마티스의 조각은 그의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초기부터 회화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며 이 시기에 많이 제작된다. 마티스가 처음 조각에 손을 댈 때의 의도는 회화를 위한 보완 정도로 생각했으나 점차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조각을 위해서 할애하게 되었다. 마티스는 자기가 만든 소품의 조각상을 회화에 등장시키며, 회화에 등장한 소상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장식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한 예로 1907년에 제작된 청동 조각상 <잠자는 나부>는 <푸른 나부>(1906)를 변조한 작품으로 <조각과 페르시아 꽃병 >(1908)이라는 작품과, <금붕어가 있는 실내> (1912)에서 등장하며, 1908년에 제작된 청동 조각상 <두 흑인 여자>는 <과일과 청동>(1910) 에서 자연스럽게 장식의 구실을 하고 있다
알제리와 모로코 여행을 그린 이 작품들의 주제와 형식을 표현한 오달리스크와 그가 점차 더 관심을 갖게 되는 도자기, 직품, 벽지 등의 반복적인 디자인에서 잘 나타난다.
마티스 말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은 색종이 꼴라주일 것이다. 직접 색을 오리는 방법은 가위로 소묘를 하는것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선과 색채, 윤곽선과 표면을 하나로 결합시켰다. 죽기 십년 전부터 내장장애로 인해 이젤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마티스는 붓 대신에 가위를, 튜브 대신에 색종이를 사용해 콜라주의 회화 요소로서 평면적 성격을 부활시켰다.
1947년과 1951년 사이, 방스(Vence)성당의 건축설계와 실내장식은 마티스 예술의 귀결점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십자가, 제단,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십자가 안치소, 법의 등 방스 성당의 모든 것은 마티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방스 성당은 마티스에게 전 생애의 완성을 의미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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