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누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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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으로는 두번째로 동경미술학교에 들어간 김관호는 <해질녘>이란 졸업작품으로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작품은 일본의 문전에서도 특선의 영예를 차지하며 온갖 전시회에 특별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 서양화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조선에서 그런 천재가 나왔다는 사실은 당시 미술인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실로 조선인의 우수성에 대하여 제대로 증명이 된 것이죠.
그의 고향인 평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 이후의 그의 활동은 부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이종우의 회고에 따르면 "졸업하자마자 내려간 평양은 그에게 자극도 의욕도 주지 못했다." 는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누드화에 대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평가나 일제의 강압된 통치체제에 대해 그의 예술은 침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양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것 입니다.
게다가 1935년 즈음에는 같은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던 아들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상황들은 그로 하여금 결국 절필을 하게 하고 술과 사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복을 맞은 후 아들을 잃은 상념으로 김관호는 은둔자적인 자세로 손자와 손녀딸이 커가는 것을 보며즐거워하는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으로 한반도가 나뉘는 상황에서 생의 낙이었던 손자들을 남으로 내려 보내고 그는 평양에 남아 그의 며느리와 함께 매우 어렵게 살았습니다.
과거의 정감어린 평양과 현재의 변모해 가는 평양의 풍경을 정감 있고 특색 있게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주로 우리가 그의 표준작으로 보는 〈해질녘〉과는 좀 다르게 제작되었습니다. 대상의 형태보다는 색채와 분위기를 중시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색조를 이루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으며, 또한 빠른 세필 묘사로 생동적인 화풍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표적인 북한미술로 알려진 그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서양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1935년 즈음에는 같은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던 아들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상황들은 그로 하여금 결국 절필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붓을 꺾고 목재상을 하던 그는 북한 정부의 도움으로 환갑을 넘어 다시 재기를 하게 됩니다. 그의 생애 말미 5년 동안 모란봉이나 대동강 등 평양일대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대표적인 북한미술로 알려진 그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민족적 비극 등 질곡의 역사 속에서 끝내 자유스러울 수 없었던 그는 1959년,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손자들과 생이별을 한 채 그 생애를 마쳤습니다.
[ 자화상 - 김관호 (1916) ] 고전주의적 형태묘사에 충실했으며 부드러운 필치에 중후한 느낌을 주는 색채감각이 두드러진 작품입니다. 평양출신다운 모자와 의상이 특징적입니다. 당시 화가들은 쉽게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렸습니다.
[ 해질녘 (1916) ]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는 한 조선인을 단번에 유명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청년 김관호는 이 작품을 동경미술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제출했는 데, 그해 최우수작이 되었으며 그 이후 매해 동경미술학교내 전시회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나체를 그렸다 해서 신문에는 실리지 못하기도 했죠. 석양의 역광을 받아 빛나는 여체를 그린 이 작품은 사실적 묘사와 정감있는 광선의 표현으로, 현재까지도 국내 최고의 유화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정자가 있는 풍경 - 김관호 (1916) ] 일찍 절필을 하게 되는 관계로 두 점 정도 밖에 풍경화를 남기지 못한 김관호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김관호의 진품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정확한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으나 거의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붉은 색의 정자와 붉은 빛이 도는 호숫가가 아직은 풍경화가 많이 정착되지 않은 듯하게 낯설어 보입니다.
[ 홍경선 - 김관호 (1948) ] 절필했다가 다시 붓을 들게 된 김관호가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북한 미술이라 명명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당시 이산가족이 된 채 북한에 남아 북한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린 북한 노동자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동북아역사를 연구하는 한 독일인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 공장 - 김관호 (1956) ] 앞의 < 홍경선 > 과 마찬가지로 북한 미술로 대표되는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청회색 톤을 띄고 있는 작품 속에서 붉은 색채의 공장 하나가 아련한 공장의 연기와 함께 쓸쓸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작가의 외로움이 색채로, 구성으로, 터치로 묻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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