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또다른눈

Karim Lamzi

하늘타리. 2008. 12. 13. 00:28

 

누드사진의 예술성은 ‘옷을 벗었느냐 안 벗었느냐’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랑이를 벌려 ‘음부가 보였느냐 안 보였느냐’하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도 아니다. 누드사진이든 아니든 예술은 작가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탐구정신과 몰입에 있다.


 

인물, 패션 사진작가로 유명한 카림 램지(Karim Lamzi)의 작품은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음탕했었는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다. 대부분의 이름난 사진작가들이 그렇듯 그는 단지 알몸이지만 욕망이 끼어들 빈자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옷을 입고 있음에도 스스로 흥분하게 만드는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으로 보면 마치 예술가의 외도처럼 보이지만,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 요르단, 모나코 등 왕족들의 인물사진을 많이 찍기도 했다. 탁월한 인물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기본실력을 지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게다가 고객들이 왕족들이었다는 점은 그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 그에게 빠져든 것은 ‘댄서들’(dances)이란 사진 때문이다. 춤꾼들은 예술가들에게 훌륭한 소재였다. 얼핏 떠오르는 것은 발레리나의 그림을 그렸던 드가 정도지만. 춤꾼들의 몸짓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가들은 수도 없이 많았던 것 같다.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던 한국이 낳은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을 기억하는가. 이 사진과 비교된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 사진 역시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 장의 사진이 고단한 노력 끝에 성공의 자리에 오른 그들의 인생을 엿보게 했던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강수진과 박지성은 기억이 나는데 사진작가의 이름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흐른 느낌은 있지만 카림 램지의 사진은 강수진과 박지성의 발 사진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그는 사람의 몸과 몸짓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지 한 장으로 사진으로 말하고 있다. 분명 벌거벗고 있지만 젖가슴 따위는 그의 사진에서 어떤 욕망으로도 유혹하지 못한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인 갈등은 그의 사진에서 단지 흑백사진의 콘트라스트처럼 훌륭한 대비로 쓰일 뿐이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가진 임산부 댄서의 몸짓은 숭고함을 한껏 강조한다.

  


댄서의 몸은 일반인에 비해 자유롭다. 일자로 쭉쭉 벌어지는 다리와 유연한 허리의 놀림. 그들의 몸동작 하나하나 만으로도 아름다움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더욱 아쉬운 것은 그들의 몸짓은 카메라에 담기기 전까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벌거벗은 댄서가 춤춘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찰라의 몸짓을 날린다. 아마도 카림 램지는 댄서들이란 이름으로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춤꾼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춤꾼들은 수많은 동작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가장 아름다운 춤꾼들의 사진은 탄생했을 것이다.


우리는 누드사진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손만 뻗어도 누드와 포르노 사진이 쏟아져 나온다. 휴대폰의 버튼을 몇 번만 눌러도 누드사진들의 유혹이 펼쳐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드사진에 대한 갈증은 커간다. 가끔은 꼴리지 않는 누드사진 진짜 예술을 위한 누드사진도 볼 필요가 있다. 정신건강을 위하여.


 


      Peribanou / Savina Yannat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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