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직접 프로모션 한다 | |
[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아티스트 마케터 | |
고도의 마케팅 전략으로 명성 시장 장악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획기적인 전시가 하나 열리고 있다. 12월 14일까지 열리는 ‘제프 쿤스, 베르사유’가 그 전시다. 프랑스 문화유산의 간판스타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방마다 미술품을 설치해 놓고 관람객을 맞는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미국 팝 문화의 대표 ‘악동’을 초대해 대규모 전시를 열어준다는 것 자체가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이런 기획 전시로는 이전에 18세기 가구전이 한 차례 열렸을 뿐이다). 어쨌거나 베르사유 궁은 제프 쿤스의 전시를 기꺼이 열었고, 이에 항의하는 프랑스 보수 문화인들의 비난과 불평을 딛고 지금껏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나아가 이런 소란까지 전시를 널리 알리는 소재가 되어 요즘 제프 쿤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쿤스의 작품은 궁전 앞뜰의 <풍선 꽃>과 헤라클레스의 방의 <풍선 강아지>다. 상큼한 인상의 <풍선 꽃>도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헤라클레스의 방에서 <풍선 강아지>를 본 사람들 또한 너나할 것 없이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방 한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풍선 강아지가 트로이의 목마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쿤스는 이 작품들을 포함해 모두 17점의 작품을 이번 전시에 선보이고 있는데, 장난감 같은 ‘유치 찬란’한 이미지를 바로크의 걸작 베르사유 궁전에 내건 발상이 진정 미다스의 손처럼 경이롭게 다가온다. 물론 그 경이감의 원천은 작품 자체에 있지만, 베르사유 궁전이 혹할 만큼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이런 신선한 충격에 아예 빠져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무대 삼아 키치 미술로 한판 잘 ‘놀아 보겠다’는 기발한 발상과, 이로 인해 베르사유가 얻게 될 ‘진취적인’ 이미지, 보수적인 문화 인사들의 ‘분노에 찬’ 비난, 잇따를 수밖에 없는 매스미디어의 지대한 관심, 그것들이 불가피하게 가져올 쿤스라는 ‘브랜드’ 가치의 제고와 시장 가치의 상승은 철저한 계산과 분석에 따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쿤스는 매우 뛰어난 아티스트이자 아트 마케터라고 할 수 있다. 사실유능한 마케터로서 쿤스의 재능은 이탈리아의 포르노 스타 치치올리나와 결혼할 때부터 나타났다. 그는 치치올리나와의 섹스 장면을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찍고 조각으로 만들어 전시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엄청난 악평에 시달렸다. 하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이 시도가 성공적이었음은 숱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날 그가 세계 경매 시장에서 생존 미술가 가운데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이번 베르사유전에 출품된 그의 <매달린 하트>는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2360만달러(300억원)에 팔렸다. 제프 쿤스뿐 아니라 현대의 많은 스타 미술가들이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마케팅은 전통적으로 갤러리의 영역이었다. 갤러리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시장에 선보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본적인 마케팅 기법이 동원됐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금도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갤러리는 그리 많지 않다. 천재들의 창작물을 소수의 부유한 컬렉터에게 파는 게 갤러리 비즈니스의 요체다 보니 대중을 겨냥한 마케팅이나 첨단 마케팅 기법의 개발 같은 게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문제는 갤러리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일차 시장이 여전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데 있다. 메이저 화랑에 전속되기 위해 애쓰던 미술가들도 갤러리와 계약관계가 형성되면 곧 이 관계가 자신을 프로모션하는 데 꼭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배타적인 방식으로 소수의 ‘큰손’을 상대하는 갤러리와 갈수록 대중적 인지도와 스타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미술가 사이에는 자연스레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에 미술가들을 상대로 한 독립 매니지먼트사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서구에서도 이런 현상은 이제 일반화되고 있고, 나아가 초대형 스타가 된 미술가의 경우 갤러리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외부 기관으로부터도 독립해 스스로를 경영하고 판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제프 쿤스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데이미언 허스트가 그와 함께 이 흐름의 선두에 서 있는 거장이다. 물론 두 사람은 굴지의 갤러리들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전통적인 폐쇄적·배타적 계약 관계가 아니다.
허스트는 지난해 8월 사람의 해골에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한 컨소시엄에 5천만 파운드(1150억원)에 팔았다고 주장했는데, 작품이 워낙 도발적인데다 허스트 자신이 컨소시엄의 투자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게 알려져 크게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것도 ‘노이즈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되어 결과적으로 이번 소더비 경매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아티스트이자 마케터로서 이런 전략 노선을 성공적으로 달린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선구자는 앤디 워홀이다. 그는 스타들의 사진을 찍어 초상화를 만들고 그들의 명성에 기대 작품을 팔고 자신의 인지도를 높였다. 나중에는 대스타인데도 작품으로 제작되지 않은 이들이 불안감 혹은 열패감에 싸여 그에게 작품을 살 테니 초상화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기도 했다. 워홀 이래 많은 현대 미술가들이 이런 전략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왔다. 이를 두고 예술의 상업화 논란이 거세지만, 오늘날 전략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미술가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과연 현대미술은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마케팅의 소산일까? 감상자들의 고민이 그만큼 늘 수밖에 없는 시대다. 미술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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