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삼양동 일주도로변에 있는 원당봉(일명 삼양봉)은 남쪽에서 볼 때에는 숲속에 싸인 반원형의 둥긋한 외관을 하고 있지만
동쪽이나 서쪽에서는 3단으로 너울지며 바다로 흘러드는 능선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바다에서 뛰쳐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잇습니다.
그리고 그속에 주봉과 망오름, 앞오름, 펜안오름, 도산오름, 동나무기, 서나무기 등 7개의 봉우리가 있어 삼첩칠봉(三疊七峰)이라고도 불려 왔습니다..
육지부에서 산속 깊은 곳에 사찰이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 지지만 제주에서는 육지부의 산이라고 할 오름에 사찰이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곳 원당봉에는 오름을 오르는 길 좌측에 조계종의 불탑사, 태고종의 원당사 두 개의 사찰이 문을 마주하고 있으며 오름 분화구에는 천태종의 문강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탑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5층석탑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오름을 원당봉이라 부르게 만든 원당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절입니다.
원당사는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법화사,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수정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탐라에 지어진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원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기황후(奇皇后)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세운 절로 알려졌는데,
법화사나 수정사와는 달리 창건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구전에 의해서만 창건과정을 짐작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불탑사 내부에 있는 안내문에 원당사의 창건연대가 1300년(충렬왕 26년) 경이라고 적혀 있는데,
기씨가 공녀로 잡혀갔던 시기가 1333년임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탑사 입구 반대편에는 태고종 원당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새로운 원당사입니다.
오름으로 다가가 보면 해발 170.7m의 주봉이 트인 말굽형 형태인 굼부리 중앙의 연못을 품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숲 사면이 견고한 울타리로 둘러놓은 듯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위 사진 : 2008년 6월 촬영 by 머체)
원당봉의 주봉을 오른쪽사면으로부터 오르다 보면
조선시대 위급한 상황을 알렸던 제주도내 25개 봉수대터중 하나로 동쪽으로 함덕 서모봉 봉수대와, 서쪽으로 사라봉 봉수대와 교신을 했던 봉수대터가 있습니다.
(그런데...봉수대 터는 여기가 아니고 굼부리 400미터 북쪽 망오름에 있는 흔적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약 10미터 지점에 일제때 파놓은 진지동굴이 있습니다.
굴 중간부근에 치성드리는 흔적이 있어서 들어가기가 영 민망하지만 그래도 원당봉을 빙 둘러 파놓은 다섯곳의 굴 중에 유일하게 진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치성을 위해 차려놓은 젯상뒤로 굴이 계속 이어집니다만 돌아 나가겠습니다.
봉수대표지를 지나 조금 올라오면 쉬었다 가라고 휴식시설을 해놓았습니다.
사라봉쪽으로 시야가 트이네요.
이 밑으로 조금만 가면 입구가 무너진 동굴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그 입구가 아까 동굴과 연결된 반대편 출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경방초소가 보이는 것을 보니 정상입니다.
경방초소 지나 시멘트 구조물 흔적 좌우 능선에 각각의 동굴진지의 무너진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측입니다
좌측입니다.
서쪽 길을 따라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북화력발전소가 보입니다
그리고 잔디밭 마당에 불상이 세워져 있는 불탑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절이 보이는 지점 오른쪽에도 동굴진지의 무너진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당사지 그러니까 불탑사 뒤편에서도 2곳의 진지동굴입구를 찾을 수 있다는데 그 곳은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1945년 2월 무렵 이 오름에 진지동굴을 구축할 때 한동리에 진드르비행장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울퉁불퉁한 진드르땅을 평탄작업하면서 원당봉의 송이를 파서 이곳 저곳 메꾸는 작업을 하여 지금처럼 평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 원당봉 동북쪽사면이 많이 깍이였다는 아픔을 생각하며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며 원당봉 제단 수리시 희사하신 분들의 공덕비를 둘러보는 것으로 오늘의 헤매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