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비단결처럼 아름다운 금강천리길을 걷다 6-1

하늘타리. 2016. 11. 28. 19:25

10월 22일


꽤 오래간만에...
우리땅걷기 도반들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땅걷기에서

비단 결처럼 아름다운 금강 천리 길을

 4월 달 부터 월 1회 1박 2일씩 걷기시작해서

이달에 여섯번째가 된 기행길을

합께 나선거지요.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 뜸봉샘에서부터 비롯되는 금강은

 그 길이가 남북의 강 모두 중 여섯 번째이고

남한에서는 낙동강, 한강에 이어 세 번 째이며

총 유역 면적만 해도 9천8백86㎢에 이르릅니다.


수분이 고개를 넘은 금강은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 대청댐을 거쳐 신탄진을 지납니다.

세종시의 부강포구를 거쳐,

백제의 두 번째 수도인 공주를 거쳐 세 번째 수도인 부여에 다다릅니다.

부소산 자락을 지나 구드래 나루를 거쳐 강경에 이르고

익산 웅포와 군산의 공주산을 거쳐 군산과 서천을 가로 지른 금강 하구둑에 이릅니다.


상류에서부터 적등진강(赤登津江), 차탄강(車灘江),

화인진강(化仁津江), 말흥탄강(末訖灘江), 형각진강(荊角津江) 등으로 불리우던 이름은

지금은 다 금강으로 바뀌었지만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으로 불리웁니다.


우리땅 걷기에서는 그간 다섯번의 기행을 통해 공주 고마나루까지를 답사했습니다.

그 다음 길을 이어걸으려 모인 회원들이

금요일밤 서울에서, 전주에서 출발하여 계룡산 갑사입구 유스호스텔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숙소에서 눈을 뜹니다.


창밖으로 계룡산 연봉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전까지 주변을 돌아봅니다.
갑사지구 주차장 주변과 갑사입구 괴목신당입니다.











아침식사후 버스가 달려갑니다.


공주다리와 공산성이 창밖에서 나를 부릅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의 가장 동북단지역입니다.


후백제의 숨결이 남아있는 충남 예산 봉수산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던 유구천이

옥성리 지역내 북서쪽으로 들어와 동쪽으로 달리다가 남쪽으로 급하게 꺽어 내려가 금강으로 들어갑니다.


유구천 건너편 평목리쪽으로는 논산천안간고속도로를 비롯한 몇 개의 도로가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공주가..
다른곳도 아닌 공주에..
철도를 놓지 않겠다하여 도청과 바꾼 다리라 불리우던 공주다리를 차창으로 보며 지나왔습니다만

그렇던 공주 어느 지역에 저렇게 다리가 층을 이루며 지나갈 것이라 생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생경하게만 느껴집니다.


유구천을 따라 내려갑니다.


유구천이 금강과 합치는 곳인데 합수지점을 보려면 강안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잡풀과 잡목을 헤치고 몇개의 박주가리를 생각없이 밟으며 강안으로 가다가

문득 박주가리전설, 갑돌이와 갑순이이야기가 생각나서 걸음을 돌립니다.



이제 금강변을 연해 물억새 사이를 걷습니다.





중간중간 접근가능한 곳에서는 강변으로 다가가 봅니다.















물억새밭을 나서니 뻥뚤린 도로공사현장입니다

연미산고갯길에서 부터 연결된 공주 어천간 4차선 아스콘 포장도로공사현장입니다.
우리가 내려가는 방향 반대로

어천리에서 죽당리를 지나 오동리까지는 이미 포장이 완료되어 길이 열려있습니다.
이길은 개통이 되면

공주시 에서 우성면 어천리로 이르고

그곳에서 서남으로 금강변을 연해 청양군 청남면을 달리는 625번 지방도와 이어질겁니다.


다시 오게되면 이렇게 자연스러운 강변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4차선 도로위에는 차들이 생생달릴것이고..
강변은 고수부지식으로 개발되어 규격화된 그 어떤 것들이 우릴 맞을겁니다.
잘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자연스러운 풍경은 이번 이걸음이 마지막인듯 싶습니다.


아쉬워서 산쪽으로 헤쳐들어가 밭둑길을 걸어 봅니다



다시 강변으로 나옵니다


또 다른 공사의 현장을 만납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마산 정상에서 보면

이일대 연당지 인근이 참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이곳도 도로공사 핑계로 또 다른 공사를 함께 벌리고 있습니다.



논둑길을 걸어 옥성2라로 들어갑니다.




옥성 2구 마을회관.




김녕김씨 집성촌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을 가장 높은 동산에 김문기선생 사육신현창비가 있습니다.


1977년 후손들의 요청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사육신명단에 유응부선생을 빼고 김문기선생을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백촌(白村) 김문기선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그는 1399년 정종 1년에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426년 세종 8년에 생원시와 문과의 대제과(對第科)에 합격,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을 지냈고 태종실록(太宗實錄)을 편찬하였으며,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습니다.

함경감사 때는 학문을 널리 장려하였으므로 유림(儒林)에서 생사(生祠)를 세웠습니다.
1453년 단종 1년에 형조참판에 제수되었다가 함길도도절제사로 나갔습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한 후 다음해에 공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1456년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주동이 되어 단종복위를 계획하다가

일이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주살당할 때,

그도 이 사건에 관련되어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복위를 계획하다 주살당한 일은

남효온(南孝溫)이 쓴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 실리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뒤,

1691년 숙종 17년에는 국가에서 육신을 공인하게 됩니다.
김문기선생은 1731년 영조 7년에 복관되었으며,

 1757년에는 충의(忠毅)란 시호가 내려졌고

경상북도 금릉군 지례의 섬계서원(剡溪書院)에 향사되었습니다.

그뒤 1791년 정조 15년에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 御定配食錄》을 편정할 때

그는 삼중신(三重臣 : 閔伸·趙克寬·金文起)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고,

성삼문·박팽년·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하위지(河緯地) 등 6인은

《추강집》의 육신전대로 ‘사육신’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어정배식록》은 정조가 내각과 홍문관에 명령하여

《세조실록》을 비롯한 국내의 공사문적을 널리 고증하게 하여

신중히 결정한 국가적인 의전(儀典)입니다.
이때 김문기선생에게는 앞서 1453년 계유옥사 때 사절(死節)한

이조판서 민신과 병조판서 조극관과 함께 삼중신이란 칭호가 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장릉에서 단종을 제사할 때 함께 제사지내는 정단에 배정된 32인 중 에

육신보다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고

사육신이 더 많이 알려졌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사육신보다 더 높았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 그의 후손들에 의하여

김문기를 유명한 사육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뢰가 들어와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사육신문제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한 끝에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顯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고

이 결의에 따라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역에 그의 가묘가 설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일부학자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벌어져

신문지상에 그들의 논설이 게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유응부선생도 사육신에 포함되고 김문기선생도 사육신에 포함된다는

국사편찬위원회 발표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 현창비를 아무리 읽어봐도
 굳이 삼중신에서 포함되어 있는 선생을 다시 육신에 집어 넣은 이유를 알 수 가  없습니다.


길을 가로 질러 산길을 통해 다시 보흥라 금강변으로 갑니다.











금강을 보며 걷다가

오동리지역에서 부터는 강변으로는 길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 포장도로로 나옵니다.

어천리에서 부터 이어져 올라온 포장도로입니다.

공주시 연미산 고갯길까지 연결될 길입니다.


오동리 마을 뒤로 보이는 사마산

보흥리 지역인 저 산 정상에 서면 계룡산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면 유장하게 흘러가는 금강을 볼 수 있지요.


금강 하구둑으로 부터 76.5Km





죽당리지역에 들어서면서 강변이 이어집니다.


















억새와 물억새의 흐드러지는 춤을 보며 몸과 마음 함께 흐드러져갑니다.













버들여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가는길의 이름이 버들여울길입니다.







강을 봅니다.

아니 강변을 봅니다.
강변으로 연해 포장된 도로위를 걸으며 위에서 아래방향으로 그저 강변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