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두타산 1. 매표소에서 두타산성

하늘타리. 2013. 12. 18. 19:23

한국의 산하에서 옮겨온 두타산에 관한 자료입니다.

 

두타산 [頭陀山]

높이 : 1357m
위치 :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은 청옥산과 한 산맥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명산으로 사계절 등산 코스로 이름이 높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깎아지른 암벽이 노송과 어울려 금세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물과 어울린 무릉계곡의 절경 골짜기는 비경이다.

동해와 불과 30리 거리에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는 피서객들에게는 이상적인 산이다.
 
산이름인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두타산에는 두타산성, 사원터, 오십정 등이 있으며 계곡에는 수백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단석이 많아 별유천지를 이루고 있다.

두타산의 중심계곡인 무릉반석을 비롯,

금란정, 삼화사, 광음사, 학소대, 광음폭포, 옥류동, 두타산성, 쌍폭, 용추폭포 등의 아름다운 명소와

유서어린 고적이 많다.
 
두타산(1,352)과 4km 거리를 두고 청옥산(1,404)과 이어져 있어 두 산을 합쳐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동해관광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두타산에 관한 자료입니다.
 
무릉계곡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하는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약 4㎞에 달하는 계곡을 가리킨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릉도원',

산수의 풍치가 절경을 이루어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은 소라는 전설이 있는 호암소가 계곡 입구에 있고,

유서깊은 삼화사가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서쪽으로 금란정이 있다.

금란정 부근에는 넓은 반석인 무릉반석이 있고,

그 위에 많은 명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릉계곡의 절경을 이루는 무릉동일대에는

태암(胎巖)·미륵암·반학대(半鶴臺))·능암(能巖)·쌍현암(雙峴巖)·학소대(鶴巢臺) 등의 기암괴석이 있고,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 가면 천하장관인 용추폭포가 나타난다.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2월 5일 명승 제37호로 지정되었다.

동해시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무릉중대반석(약칭 : 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옥호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1958년 세워진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 은은하다.

 

무릉중대계곡
별유천지를 방불케 하는 중대 계곡,

두타산과 청옥산을 사이에 둔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명승지는

용추폭포의 맑은물과 병풍 같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눈내린 비경을 한층 더 연출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두타산성
 두타산 아래쪽에 있는 산성.

신라 파사왕 23년(102)에 신라가 실직국을 병합한 뒤 처음 성을 쌓았다고 하며,

조선조 태종 14년(1414)에 삼척부사 김맹손이 축조한 성이다.

높이 1.5m 길이가 약 2.5㎞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성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산의 돌을 그대로 이용해 쌓았기 때문에 그다지 견고하지는 않으나

천연의 요새지라 할 만하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 안변에서 후퇴하는 왜병의 주력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3일간의 혈전 끝에 함락되어 생존한 의병과 노약자들마저 살육되는 만행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금란정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삼화사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흑연대黑蓮臺라불렀다고 하며(삼화사사적三和寺事蹟),

흥덕왕 4년(829)에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강원도지江原道誌 ).

그후 경문왕 4년(864) 범일조사梵日祖師가 재건하여 삼공암이라하였으며,

고려태조때 삼화사三和寺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약사전만 남았었는데 현종 1년(1660년)에 중건되었다.

순조 23년(1823년)과 고종 43년(1906년), 두 차례 재난에 의해 소진되었었다.

그 후 1977년 쌍용양회 동해 공장의 채광권내에 들어가자

원래의 사지에서 서쪽 1 .3km 떨어진 현지점에 모든 건물을 재건축하였다.

1998년 12월 18일 지정된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 1292호)과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 이 남아 있다.

 

호암소
 무릉계곡명승지관리사무소 아래쪽으로 205m쯤 아래 계곡에 있는 소.
소 양옆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호랑이가 건너뛰다가 빠져 죽은 소라는 데에서 유래한다.

호암소는 김효원(金孝元)이 임경대(臨鏡臺)로 개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전설ㆍ옛날 도술에 능한 고승이 이 곳을 지나다가 호랑이가 해치려 하여,

고승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를 훌쩍 건너 뛰었는데 호

랑이가 뒤따라 건너뛰다가 고승의 발길에 채여 소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소 옆의 암벽에 虎岩(호암)이라 새겨 놓은 글씨가 남아 있어 흔히 호암소 대신 호암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 글씨는 삼척부사로 왔던 미수 허목(許穆)의 글씨라고 전하는데,

호암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3~4m 위에 中臺洞門(중대동문)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오혁(吳奕)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천은사의 전신인 용안당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때에 삼척부사로 재직 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하였다고 한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릉계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삼척부사나 토포사들의 이름이 각각 10명 이상 새겨져 있다.

 

오늘의 산행코스입니다.
매표소-삼화사-두타산성입구-두타산성-

대궐터-쉰음산갈림길-두타산정상-1560봉-

박달령-선녀탕-쌍폭-용추폭포-매표소

 

 

대궐터 삼거리까지, 두타산정상까지, 그리고 두타산정상이후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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