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토요일
절물오름을 다녀왔습니다.
절물휴양림 주차장 맨안쪽 구석에 차를 세웁니다.
꽤 많은 사람이 오는가 봅니다.
일전 지역신문기사에서 제주도 휴양림뿐 아니라
전국 휴양림중 방문객이 많은 곳 중 한 곳이라는 것을 읽은 것 같기도 하네요.
안내도를 보고
휴양림으로 들어섭니다.
정문을 들어서서 보는 또 다른 안내도
삼울로 앞에 서있는 목각장승들
인사만 하고..
삼나무가 울창한 길, 삼울로가 아닌
중앙통로, 지금은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이름, 물흐르는 산책로를 걸어갑니다.
연못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절물오름
옛날에는 대나오름이라 불리어서 음을 따서 한문으로 丹霞岳
그런데 대나라는 옛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고...
의미모르는 이름을 쓰면서 폼잡는 사람들 몇이 있지요.
물이 자연 용출되어 나오는 오름 기슭 옆에
어느날인가 절이 들어서고
물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제주사람답게 절에 물이 있는 오름, 절물오름이라 부르니
뜻을 따서 한문으로는 寺水岳이 되었습니다.
표고는 696.9m라 하지만 비고는 147m입니다.
제주도 오름치고는 낮은편은 아니지만 등정로의 경사도가 심하지 않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작은 절물이 경사도가 급해 오르기가 더 힘듭니다.
아참 작은 절물오름은 이제는 등정로는 폐쇄되다 시피 되어 가는 이가 없습니다.
연못안에 비단잉어
관상용으로 기르는 잉어니까 불러모아 바라봐 줍니다.
보아달라고 만든 폭포도 보아주고...
족욕장 옆을 지나
약수터로 갑니다.
이 자연 용출수옆에 절집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절이 있었던 흔적은 그 언젠가 없어져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이지점에서 북서쪽에 1957년도에 처음 만들어진 약수암이라는 절집이 있습니다.
절물오름으로 올라갑니다.
활엽수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울창한 자연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등성이로 올라 섰습니다.
왼쪽으로도 길을 다시 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안내판에 그려진 제1전망대까지만 갈수 있도록 하고
왼쪽길도 막고
제1전망대 이후 이어진 길도 막았었는데
손님이 많이 오니 인심을 썼습니다.
굼부리쪽을 내려다 보고
한라산 보다 높아 보이는 전망대로 갑니다.
전망대 오르기전 보는 작은 절물오름
전망대에 오릅니다.
내려다 본 주변 모습.
위 사진들을 merge해서 한장으로
전망대에서 내려와 제2전망대로 가면서
굼부리 건너 작은 절물오름을 다시 봅니다.
표고 656.7m에 비고 120m로 작은 오름이라 불리울 만한 오름은 아닌데
하필 조금 더 큰 오름옆에 있어서 작은 절물오름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래서 기분 나쁜지 아무도 오지말라고 합니다.
1, 2전망대 사이에서 보는 한라산
뒤로 돌아보면 제주도 동쪽의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왼쪽 뒷줄 세번째 봉우리가 성산 일출봉입니다.
일출봉을 불러봅니다.
제2전망대에서 한라산을 봅니다.
다섯장을 merge해서 올리고..
등성이를 돌아 내려가...
오른쪽 방향, 장생의 숲길로 갑니다.
장생의 숲길 입구까지는 8Km, 출구까지는 3Km
입구라고 하는 곳까지 남은 8Km를..
아무생각없이...
때로는 오만 잡생각을 하며...
나무와 눈도 맞추고...
돌한테도 말 걸어보고...
골총이 되어버린 무덤 그 가운데에서 올라온 나무에게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듣고...
땅위로 펼쳐있는 판근도 눈으로 어루만져주고...
연리목 사연도 들어주고...
그렇게 걸어갑니다.
이 부근에서는 드물게 흙길로만 왔습니다.
방문객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포장을 하거나
포장을 않하면 데크를 깔아서
도무지 땅의기운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게 제주도 환경관계자들의 마인드입니다.
그래서 유네스코자연유산이라고 하는 검은오름도 그렇고
동네오름도 그렇고
전부 데크길입니다.
그 친절이 도리어 부담스럽고 불쾌하였는데
여기는 흙길입니다.
감사를.. 또 감사를... 드립니다.
왜 걸을까?
그렇게 편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이 왜 일부러 걸을까?
피톤치드와 테르펜 때문일까요?
하여간 걷습니다.
숲길을 걸을 때 느끼는 마음의 여유와 육체의 적당한 피로는
삶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다가 목각장승을 만납니다.
아 11시 반이다.
꿈속을 걷다가 현실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주차장에 12시까지 가야되는데...
임도로 방향을 틉니다.
아쉬움에 장생의 숲길 남은 거리를 걸어갈 입구를 한전 더 봅니다.
마음은 그리간다치고 사거리 한켠 물봉선과 잠시 눈싸움합니다.
사진이 흐려진 걸 보니 내가 졌네요.
포스팅하면서 보니까 모든 사진이 선명하질 않습니다.
사실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스로우 스로우 퀵퀵이 춤 뿐이 아니라 세상 모든것에 통용되는데 계속 퀵퀵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진찍을 때도 고정된 자세를 취하지 못했지요.
단지 그날의 분위기만을 기록합니다.
삼나무 숲이 좌우에 시립해 있는 임도를 걷습니다.
물이 넘친다는 절물에도 별도의 급수조가 있군요.
불탑이 있고 부처님이 불탑앞 노천에 그냥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마당 중앙에 삼존불이 서 계십니다.
사천왕이 아닌 야챠들이 절입구를 지키는 약수암입니다.
시간도 없지만 제가 들어갈 절집이 아닙니다.
1957년의 어느날
당시 35살의 고순녀 여인이 어느 날 밭에서 김을 매다가 홀연히 손에 들고 있던 낫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습니다.
그 머리카락을 허공에 던지면서 “이 머리카락 수만큼 많은 도를 기필코 이루리라”고 소리치고서는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그 당시 아무도 살지 않고 잡목만 무성하던 봉개동 산기슭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스스로 대각심이라 이름하고 암자를 지어 수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절집입니다.
지금 우리나이로 90쯤 되셨을텐데
예사롭지 않은 삶과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수행이 소문나서 많은 신도가 온다고 합니다만
신도들이 돈을 주면 받지 않고 신도들이 불상 앞에 돈을 놓고 가면
그 지폐들을 검정 고무줄로 둘둘 묶어서
제주시의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갖다준다고 합니다.
하루 한끼 점심만을 먹으며 모은 돈을
간헐적으로 1000만원씩 세번이나
도교육청에 기탁하시기도 하셨답니다.
중생구제의 간절함으로 보시금 천원에도 법문을 열심히 해주신다합니다만
어설픈 이들을 만나면 욕부터 시작하신다니
불교신자도 아닌 저로서는 찾아 뵐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삼울길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패랭이장승에게 나중에 보자고 한마디 던지고...
휴양림을 나섭니다.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작품 8의4 겨울
Antonio Vivaldi - "L'inver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