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516도로 표지석

하늘타리. 2009. 11. 3. 23:11

    제주대학교에서 산천단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 오른 쪽에 516도로라고 쓰여 있는 도로 표지판이 나옵니다.

    항상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오늘은 갑자기 눈에 띄더군요.

    아니 보다 자세히 말하면 도로표지판 주위에 공사자재들이 눈에 띈 거죠.


    제주대입구 4거리에 곰솔이 지속적으로 투입된 농약에 의해 죽자 그때만을 기다린 듯 그곳까지 왕복 6차선공사를 뚝딱 해치우더니 그곳에서부터 산천단 입구까지 도로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516도로 전체가 전부 확장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차를 세우고 표지판에 가보았습니다.


    이게 산업도로가 아닌 관광도로인데 이 길을 꼭 넓힐 필요가 있을까?

    철쭉과 벗꽃피는 봄, 녹음 우거진 여름 숲, 빨갛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 숲의 가을 , 눈꽃핀 겨울 숲을 지나면서 한라산의 수려한 모습을 느끼며 천천히 가면 않될까?

    바쁜 사람은 제주도 서쪽에 평화로를 이용하여 창천에서 서귀포로 달리면 될 것이고 동쪽 번영로도 계속 확장 공사하던데

    굳이 이 516도로를 확장할 필요가 있을까?

    새로 개장한 별빛누리공원과 한라산 CC라는 골프장에 대한 접근성은 좋아지겠지만 관광지 도로가 넓고 빠르면 도리어 관광에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공사자재가 최대한 않나오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516도로라고 하면 않되고 이 표지판도 치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게 생각이 나더군요.

    글쎄요.

    그러면 이도로 자체를 없애 버려야지요.

    도로자체가  일제강점기에 식민화의 수단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던 도로이니까 일제의 잔재도 없애고 516의 흔적도 없애려면 도로 자체를 없애야지요.

    도로자체를 없앴다 하더라도 "일제강점기에 건설하기 시작하다 5.16후인 1962년 3월에 공사를 다시 시작해서 1963년 10월 11일 미포장 상태로 개통했고,4년만인 1966년에 전면 개통되었으나 어떠어떠한 이유로 어느 어느 날에 도로를 없앴다"는 근거가 남을 테니 그 기록도 없애야지요.


    제가 지금 부질없는 논쟁에 끼어든 것 같네요.


    기록된 사실만 옮겨 봅니다.


    1961년 12월에 국토건설단 설치법(법률 제779호)을 제정 공포하고 1962년 2월 10일 11시 중앙청 홀에서 국토건설단 창단식을 합니다.

    국토건설청을 신설하여 청장이 단장을 겸했으며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국토개발을 담당케 하였답니다.

    최초 사업목표를 수립할때는 ....

     첫째, 제 1지단은 진주 남강댐 공사(2,158명 투입)와 섬진강댐 공사(908명)에 투입되어 진입도로 23km와 이설도로 32km, 방수로 16km의 공사를 담당한다.

    둘째, 제 2지단은 춘천 소양강댐 건설공사(1,390명 투입)와 춘천댐 건설공사(868명 투입)에 투입되어 진수로 2km의 공사를 담당한다.

    셋째, 제 3지단은 태백산 지구 예미와 정선간 철도 42km와 산업도로 38km의 공사를 담당하며, 울산공업  센터 공사도 추가 담당한다.(산업도로에 1,794명, 정선선 철도에 3,166명, 울산 공업지구에 2,210명을 각각 투입)

    넷째, 제 5지단은 영주와 점촌간 경부철도 58km의 공사를 담당한다.(4,943명 투입)

    ........고 되어 있어서 제주도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국토건설단이 운용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당시 제주도지사가 당시 도세가 미약하고 도재정이 없어 도로건설은 커녕 유지보수에도 힘들어하는 실정을 중앙에 알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국토건설단에 별도의 분단이 편성되어 한라산 횡단도로 건설에 투입되게 되어 62년 3월 23일에 기공식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국토건설단 제주도착 (제주시청 자료) 

    국토건설단 구성원이 일반병역기피자와 조직생활을 하느라 군에 안간 사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기는 변방이다 보니 조직출신인원이 상당히 많았다 합니다.

    (그래서 구전되는 이야기로는 횡단도로건설당시에는 분단장, 건설대장, 조장, 이렇게 내려오는 공식채널이 잘 운용되지 않자 제주도 사설치안 본부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허 욱형이라는 사람이 건달 중간보스들를 통해 총 감독노릇을 했다고 하네요)


    병역미필자들이 노동으로 국가에 봉사하겠다고 출범한 국토건설단은 여러 가지 부작용(몸이 아파 군대 못간 사람에게 도리어 중노동을 부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고 조직출신들의 잦은 난동과 공사장 주변주민들과의 계속되는 마찰 등..)으로 1962년 12월에 공식적으로는 해체됩니다.

    기 소집된 인원중 일반 병역기피자는 입대를 시키고 환자는 귀향조치시킨후 남은 인원들로 각지에서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1963년 10월 11일 미포장 상태로 개통했고, 10월 19일부터 16인승 버스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왕복했으며 1966년에는 교량 14개와 도로 40.43㎞를 4m폭으로 포장하여 전면 개통하게 되었습니다.

    1966년 당시 일주도로도 포장이 않되어 있었고 가장 빠른 길로 가도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도락구타고 5시간 넘게 걸리다가 1시간 만에 제주에서 서귀, 서귀에서 제주를 갈수 있으니 도로개통식날 제주와 서귀에서 각각 개통식을 마친 제주시 서귀포시 유지들이 남수악에서 만나 껴안고 춤을 추는 것(제주신보)이 당연하겠죠.


    개통 당시의 도로 이름은 '횡단도로'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라산 제1횡단도로입니다. 도로번호로는 국도 11번 도로였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국도태체지방도 1131번입니다.

     

     

     

    횡단도로 개통식 (제주시청 자료) 


    그리고 516도로라는 명칭은 정부에서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도로개통을 기념하여 주민들에게 도로이름을 공모하였더니 516도로로 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어 박정희 대통령에게 휘호를 부탁, 글씨쓰기 좋아하던 박통이 516도로라고 써서 보내주자 1967년 4월에 산천단 못미처에 기념탐을 세우고 그 뒤에 서귀포토평에다 하나 더 세운 겁니다.


    그리고 세상이 많이 바뀐 2001년 1월 도로명칭을 바꾸려고 시도했으나 도민의견 조사결과 다수가 지금이름 그대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여 아직 516도로라고 하는 별칭이 계속 쓰이는 것입니다.



    역사를 있는 그 자체로 보아야지 내 마음에 들면 그것이 절대선이고 내 마음에 안 들면 그 것이 절대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또 다른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성공한 자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아름답고 실패한 자의 넋두리는 현란할수록 비참하답니다.


    공사간에는 슬픔과 비탄의 길이었던 도로이었지만 개통과 더불어 도민에게 경탄과 기쁨을 주었듯이 앞으로도 계속  즐거움과 추억의 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영관도지사 공적비와 개오리오름앞 옛 매표소 자리의 사진 추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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