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탐라왕자묘

하늘타리. 2009. 10. 21. 15:31

 

삼국사기에는 AD 5세기 말에 탐라국(耽羅國)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합니다.

독립국의 위상을 갖고 있으면서 백제에 조공을 바치는 사이로 그려지죠.

그러던 탐라는 백제멸망 후 2년 만인 신라 문무왕 2년(662년) 신라에 복속됩니다.


그리고 고려사를 보면 숙종 10년(1105년) 고려의 군으로 편입될 때까지 독립국의 위상을 유지했다는데......

제주도땅 어디에도 탐라왕궁의 자리도 없고 그 왕들의 무덤자리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에 관한 기록 조차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고고학 전문가도 “탐라국 존재 자체가 실체가 모호하다"고 하는 실정입니다(제주교육박물관 양종렬 학예 연구사. 서귀포신문 2009.3.19)

 

제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않되는 일입니다.

 

법화사 인근에 탐라왕자묘가 있다 해서 다녀 왔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21번지에 위치한 3기의 분묘인데 이원조의 《탐라지초본》, 《대정군읍지》와 김양익의 《심재집》등 문헌에 「왕자묘(王子墓) 재현동사십오리(在縣東四十五里) 궁산양천지간(弓山兩川之間) 삼묘계체상존(三墓階체尙存) 양우유백작약(兩隅有白芍藥)」이라는 기록을 왕자묘의 위치의 근거로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하였답니다.

 

발굴조사단에 의하면 1호분과 2호분은 조선 초에 축조되었는데 1호분의 경우 곽의 구조와 각종 석물(비석·등잔대·문인석), 계단 시설, 축대 등으로 보아 당대의 고위층 무덤이며, 가장 영향력이 컸을 때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하고, 3호분에서는 고려 중기의 묘역에서 볼 수 있는 소옥과 청동 그릇 조각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제일 상단에 있는 3호분이 가장 먼저 축조되었고 이어 1호분, 2호분순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합니다.

 

내부구조는 잘 다듬어진 석재로 4∼8단의 판돌과 깬돌로 축조된 네모형의 돌덧널무덤(석곽묘)입니다.

자기편과 소옥·지석좌대·석재향료·문인석 등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축조되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탐라왕자묘인가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합니다.

 

탐라왕자묘에 대한 기록은 앞에 쓴것처럼 이원조(李源祚) 제주목사가 1842년에 쓴 ‘탐라지초본’에 의존합니다만

탐라지초본에서는 묘를 탐라 왕자의 무덤이라고 단언하지 않았고 의심할 ‘疑’를 덧붙여 해석 여지를 남겨뒀지요.

 

탐라지초본 기록을 토대로 해석한 ‘증보탐라지’(2005, 제주문화원)에는 왕자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다.

“중문면 궁산의 양 하천 사이에 있다. 3기 무덤의 섬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래촌에도 궁궐터에서 주춧돌을 찾아볼 수 있다. 헤아려보건대, 탁라왕이 도읍한 곳인 듯 싶다.” 160여년전에도 분명치 않던 사실이 현대에 와서 확정된 셈입니다.

 

의문은 더 나아갑니다.

탐라 왕자가 한 둘이 아니었던 만큼, 이와 유사한 형태의 왕조 무덤이 여러 개 더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현재로선 그 이상 발견된 게 없습니다.

또 주 활동무대가 지금의 ‘제주시’였던 탐라국 왕조가 굳이 하원동까지 와서 장례를 치렀는 지도 밝혀진 바 없고요.

때문에 향토사학자 오문복 선생은 이제껏 출토된 유물들과 역사 정황을 살펴볼 때 제주에 유배온 원나라 왕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습니다.

오 선생은 “출토된 유물을 보면, 묘역 기술이나 동원된 인원 수면에서나 탐라국이라 보기 힘들다. 중국 명이 원을 제압하면서 제주로 유배된 원나라 왕족들일 것 같다”고 말했다합니다.

이에 대한 사료로서 김석익의 탐라기년(1918년)을 꼽았고, 지적한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왕 8년 7월에 명나라가 운남을 평정하고 양왕의 가족을 이곳에 안치시켰다”, “우왕 14년 조정에서 전리판서 이희춘을 보내어 신구방사 85간을 이어서 지난번 원나라에서 귀순한 달랄친왕 등 80여호를 살게 하였다.”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게 하지만 하원동 탐라왕자 무덤은 당시 고위층의 무덤으로 제주도에서 발견된 묘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분묘군일 뿐 아니라 제주도 무덤 변천과정 연구에 높은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유형의 문화유산으로 향토문화 보존에 필요함이 인정되어 2000년 6월 21일 제주도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1호분

 

복원이랄 건 없고 새로만든 문인석

 

 목위부분이 없는 문인석

 

 

 

 

2호분

 

 

3호분

 

3호분뒤에서

(가운데 숲우거진 산담이 있는 곳은 개인분묘)

 

문화재청 공식사진

 

   

    마음의 슬픔/명상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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