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음악편지

Arvo Part (아르보 페르트)- Spiegel Im Spiegel (거울속의 거울)

하늘타리. 2009. 6. 1. 15:06

 

Arvo Part
 Spiegel Im Spiegel
 
 
 
 Spiegel Im Spiegel   
 
                    
아마도 나의 음악을 모든 색을 담고 있는
 하얀 빛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프리즘만 그 색들을 분리해 나타낼 수 있는데,
이때 이 프리즘은 바로 듣는 이의 영혼이다.
 -아르보 패르트(Arvo Part)
 
작곡가 :  Arvo Part 
연주자 :  Vladimir Spivakov(Violin) ,
Sergej Bezrodny(Piano) ,
Dietmar Schwalke(Cello) 
녹음 : 1999 DDD 

 
“애스토니아,” “러시아 정교” “틴티나불리즘”
 그리고 “프리즈매틱,”
그려지지 않는 낯선 나라, 알 수 없는 종교,
발음도 잘 안 되는 특이한 말들,
 이러한 것들이 아르보 패르트를 소개할 때면
항상 함께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질적인 포장과 달리 그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정적인 직관과 명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하기에 그의 음악은 다분히 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맹목적인 반기교주의 혹은 반전위주의가 아닌,
 삶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음악
그것이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고, 때문에 모든 장벽을 넘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울려 퍼질 수 있는 것이다.
 
아르보 패트르의 『알리나』는
세 개의 “거울 속의 거울“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알리나를 위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곡 “거울 속의 거울”은 한 폭의 기하하적 추상이다.
 
메트로늄처럼 정확하게 반복되는 피아노 소리가
 미분화된 수학적 선을 그리고 있다면,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나도
 아날로그 적인 질감으로 이를 가로지른다.
 
 정확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평행선을 그리다, 때때로 공명한다.
“알리나를 위하여”는 자유로움이다.
 
시간과 음악적 구조로 투명하면서도
정교하게 짜여 져있던 세계에
갑자기 이질적인 외부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차이가 아니다.
하나의 쉼표가 있고 없음에 한편의 소설의 의미가 결정될 때,
 그 때 쉼표가 있고 없음의 차이. 아르보 파르트의 차이는
이처럼 최소한으로 절제된 방법으로 드러나는 차이이다.
 
 앞선 곡과 같이 단조로운, 조금은 멜랑콜리한 멜로디.
처음에 거기엔 어떠한 새로움도 없다.
 
그러나 볼륨을 올리고 귀를 기울여보라, 들리는가,
피아노 소리 저편에서 들려오는 공간의 너울거림이.
 피아노는 더 이상 메트로늄 마냥 정확하지 않다.
여기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유로운 영혼의 심상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음악은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종과 공명하듯이 울려 퍼진다.
 음의 울려 퍼짐, 피아니스트의 즉흥성 안에 있는,
 그 미묘한 시간의 자유로움.
 
이때 “알리나를 위하여“는 하나의 하얀 빛이 되고.
 그 빛은 ”거울 속의 거울“ 사이에서
끊임없이 매번 새로운 빛깔로 반사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르보 패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 미세한 차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기대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분명 사람들이 그의 이 가장 기본적인
 미학적 원칙에 더 귀 기울일수록,
그들은 그의 음악에서 더욱더
커다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edit / dasunmi
 
 
 
아르보 페르트, 그 영혼의 울림...
-Tintinnabuli 양식-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앞 세기말의 경향을
그대로 이어 받은 채 여전히 다양하게 혼재된
여러 경향의 음악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주류나 대안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분명히 자기의 길을 가며 나름의 설득력과 보편성을
얻으며 또 새로운 류를 형성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Arvo Part, 그는 분명 그런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아직 우리에겐 낯설고 생소하지만
벌써 마니아적인 팬들이 많고 그 음악의 아름다움과
성격으로 인해 급속도로 번져나가고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클래식 현대음악에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렵고
파괴적인 음향만 써야 되는가"라는의문을 던지며,
 
 째즈나 크로스오버 등을 기웃거리는 애호가들에게
 이 음악을 권유하고싶고,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자신도 작곡을 하며 위와 같은 의문을 수없이 해왔으며,
 또한 다른 대안을 모색하던 중에
접하게 된 이 Arvo Part의 음악은 종착역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고,
그 음악에 경도 당하는 나 자신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다음과 같은 작곡가들의 이야기는
작금의 현대음악의 한 단면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그에 대한 발로로 Arvo Part의 음악등이 나올 수 있다고 여겨진다.

"현대음악은 진정 퇴폐적이고, 정체되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작곡가들은서로를 위해 작곡하고 있으며,
대중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하다."-Philip Glass-

"음악은 전통과 과거의 방법과의 관계를 되찾고
멜로디적인 사고, 리듬의 맥박, 그리고
대규모의 구조적 힘을 다시 가동시켜
정신적인 세력으로 다시 나타나고 새로워질 수 있다.
-George Rochberg-

이 글은 작곡가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라 하기보다는 작곡어법적인 개괄적 소개와
더불어 주요 작품을 주로 소개하고 이런 음악이 나오게 된 시대적 상황과 그 음악적
배경에 중점을 두기로 한다.

1. 작곡자의 생애 및 음악 어법

소비에트 연합의 일부이면서도 조상 대대로
종교적 색채가 강한 문화적 전통을 지녔던
변방의 나라 에스토니아인인 페르트는
 1935년 파이데에서 태어나 탈린에서 성장했다.
그 환경은 특별히 종교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1980년까지 살았던 소비에트 연합의
사회적 환경과 관련되어 그는 경건함, 주관적인 종교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작품
Credo, Johannes Passion, Cantus, Summa, De Profundis, Tabula rasa,
Annum per annum, Fratres, Missa, Cantate Domino등은
초월적 성격의 "슬픔의 작품"(Leidenswerke)들이다.

소련에서 살면서 기독교적 소명감으로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그런 영웅적인 사람이 나오고 또 그런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런 것이 꼭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은 우리 안에 자유에의 의지를
생기게 하며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페르트의 음악은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
 
250년 전에 쓰여졌고 오늘날도 작곡되어 질수 있는 그런 음악이 전통적 소재와
아방가르드적 몸짓에서 하나의 주목할 만한결합으로 생성되었다.
 비발디와 에릭 사티가 그 보기이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순간과 영원은 함께 하며
그것들은 우리의 내면에서싸우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갈등, 부정, 완고함, 편협, 신념, 걱정, 슬픔
등이 나오게 된다." (Arvo Part)

페르트는 관현악 작품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9년 탈린 콘서바리토리움의
시절에 작곡된 "Nekrolog"는 음열기법을 사용하였고
 에스토니아 작곡가의 첫 작품이었다.
그리고 페르트는 작곡가로서의 정체성과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1960년대 초반, 그는 공적인 인정과 비난의 극단을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Unser Garten f r Kinderchor und Orchester(1959)과, 오라토리오
"Der Schritt der Welt" (1961)로 1962년 모스크바 작곡 콩쿨 1등상을 받았고
1968년 Credo는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Credoin Jesum Christum)"이란
가사 때문에 금지가 되기도 했다.

60년대 후반까지 페르트는 탈린에 있는 에스토니아 라디오 방송국의 톤 마이스터로
있었고 그는 거기서 50여곡이 넘는 필름음악을 작곡하였다.
그는 필름음악은 큰 문제가 없다고 여겼지만 그 역시 많은 검열과 편집이 있었다.
 

그는 초기에는 음열기법과 첼로 협주곡, 교향곡 2번, Credo , Collage sur B-A-C-H
작품 등에서 꼴라쥬기법 등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몇 년간의 자기 성찰과 작곡어법의
탐구 기간 중에 14-16세기의 프랑스와 프랑코-플랑드르 악파의 다성악곡
(마쇼, 오케겜, 오브레히트, 죠스캥)에 천착하였고
 그 산물로 교향곡 제 3번을 작곡했다.

이 풍부한 울림의 음악은 그러나 아직은 그의 탐구의 끝은 아니었다.
그는 1976년 앨리나를 위한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는데 극단적인 고음과 저음,
공허한 음정, 오르간 지속음으로 된 조용하고 아름다운 단순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세계의 첫 작품이었다. 여기서 나는 작고 단순하고 규칙적인
3화음 라인을 발견하였다."(Arvo Part)

이 양식은 그가 베를린으로 이민 가기 전까지 계속 발전시켜 왔었다.
그 후 1972년 결혼한 그의 유태인 부인은 두 아들과 함께
 1980년 이스라엘로 여행하고
그는 빈에서 1년 반 동안 머무르다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획득하고
그 후 그는서 베를린으로 갔다.

"나는 작곡을 위해 매우 오래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때론 5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매우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쓴다."(Arvo Part)

그의 걸작인 Fratres, 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ritten, Tabula rasa등은
1974-76의 창조적인 침묵 후에 나온 작품들이다. 페르트는 그리스정교에 바탕을 둔
일종의 신비주의적인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사상을 그 작품의 기저에 두고 있다.
그의 음악은 수도승이나 은둔자의 음악 같으며 영혼의 노래를 하고 있다.
라틴어인 Tintinnabuli란 단어는 일종의 의성어로서 종이 딸랑딸랑 울린다는 뜻이다.
맑고 경건하고 신비로운 을림의 음악을 얘기하기도 한다.

"나는 적은 소재, 한 음 혹은 두음으로 작곡하고 3화음과 확실한 조성에서 강한
음악적 구축을 한다. 3화음의 3개의 울림 들이 종소리 같이 울리고 나는 그것을
"Tintinnabuli"라고 부른다." (Arvo Part)

그의 음악은 미니멀 계열의 음악인데 거기서 나아가 종교적, 명상적 색채와 또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울림을 가지며 그 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2.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페르트의 음악이 나오게 된 그 배경에는 20세기후반에서 오늘까지 이르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과 그 다양한 흐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모던이란 말은 아놀드 토인비에 의하여 생겨난 역사 철학적 개념이다.

그 용어는 1970년대 미국의 문학 평론가 어빙 하우(Iving Howe)에 의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탈"(脫)이라 번역할 수 있는 Post라는 말과 모더니즘의
합성으로 초 현대주의, 후기 현대주의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의 개념적인 적용은 상당히 광범위하고 복잡다단하여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 일으켜 왔는데 1980년을 전후하여 리요타르(J.F.Lyotard)와 하버마스(J.Habermas)사이의 논쟁이 그것이다.
 
하버마스가 리요타르, 푸코, 테리다 등을 신보수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하자 거꾸로 이들이 하버마스를 신보수주의자라고 매도한 것인데,
어쨌든 포스트
모더니즘을 논의할 때 가장 요점은 그것의 배경이 되는 사회환경인 것이다.

프레데릭 제임슨(F.Jameson)에 의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후기자본주의 문화의
산물이며 크게 자본주의는 시장, 독점, 다국적 자본주의로 발전하는데
 1950년 이후나타나는 다국적 자본주의를 포스트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여 팰리오(구)네오 모더니즘(신)으로 보는 즉,
연속적으로 보는 프랭크 커모드가 있고 다른 이론가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의식적 단절이나
 비판적 반작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다양한 특징들을 대략 중요한 흐름으로 간추려 본다면 탈 이념적, 탈 역사적,
탈 문화적, 탈 형식화, 탈 확정적, 권위부정과 평등지향,
상업주의적 이런 단어들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70-8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 개념은
문학에서 시작하여 전 장르의예술분야에 폭넓게 사용되게 되었으며
음악에서도 또한 여러 현상들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음악이 인용되기도 하고, 전자기술에 의한 새로운 악기, 뉴미디어에 의한
새로운 전달방법, 또 동양요소 서양기법의 결합,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혼재,
조성의 회귀 등이 있고 또 작곡가, 연주가, 청중의 개념과 음향의 파괴를 시도하는
반 음악(anti music)이란 개념도 있다. 미니멀, 바이오, 컨셉음악 등이 그런 부류에
속해 있으며 바이오 뮤직에는 상황음악, 환경음악, 동물음악, 뇌파음악 등이 있다.
그 중 미니멀리즘음악은 제도권의 모더니즘음악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으로서
앞서 말한 조성의 회귀란 조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3. 미니멀 음악 (Minimalism Music)

우리말로 극소주의 음악, 최소음악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이 용어는 처음에는
회화와 조각에서 표현되었고 1970년대 들어 음악의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60년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어 70년대 유럽에 상륙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양한
음악적 경향 중 70-80년에 걸쳐 주된 주류는
 
신낭만주의 혹은 볼프강 림 (Wolfgang Rihm)의
신 단순성 음악과 이 미니멀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미니멀 음악은 다른 클래식 음악의 장르와
달리 록, 째즈, 팝 등에도 그 정신이 넓게
퍼져 있으며 요사이 유행하는 테크노 음악도 이 음악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또 인도등 제 3세계의 전통음악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명상음악 등에도 연관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대중음악인지 클래식 정통 곡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음악의 특징은 선율, 리듬, 화성의 원형을 아주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반복하는 것인데,
음악이 매우 느리게 바뀌므로 듣는 사람은 그 작은 움직임에 최대한의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당연히 그것은 최면의 경지까지 가게된다.
그래서 어떤 곡은 "몽환음악"이라고 까지 불려지기도 한다.

이 음악은 60-70년대의 거대하고 파괴적 음향의 음향작곡(Klangkomposition),
계산되고 지적인 총음렬주의, 해프닝적인 부조리 연극(Fluxus)등의 사조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것인데, 그 시작을 남부 아프리카의 원시적 음악이나 인도네시아의
쟈바, 가믈란 음악, 인도의 전통 시타라 음악, 명상예술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음악이 길며 서양음악의 중요한 형성개념인 반복, 변화, 대조 중에서
대조의 요소가 거의 배제되어 있다. 우주적, 종교적, 명상적, 내세적, 점진적,
객관적, 협화적, 단순, 반복, 음형적, 박절적, 규칙적, 패턴화 등의 단어들로 그
음악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악의 시조들로는 스티브라이히(Steve Reich),
테리 라일리(Terry Riley), 라 몬트 영(La monte young)등이
스승인 존 케이지의 영향을받아 동양적 분위기에서 출발은 하고 있지만,
 
즉흥적인 우연성 음악과는 달리
계산된 통제된 음악을 하며, 스승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가장 유명한 미니멀 리스트로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가 있다.
 
유럽 쪽에서는Peter Michael Hamel등이 유명하다.
그 외 Feldman도 이 계열의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John Adams(1947-)는 또 제 2세대의 미니멀리스트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Adams는 스티브 라이히의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글라스나 라이히 보단 좀 더
개성적인 접근을 보여주며 따뜻한 음향과 힘이 느껴지는 미묘한 음악을 보여준다.
그 외 록그룹의 핑크 플로이드나 비틀즈도 이런 경향을 보여왔고 재즈 쪽에서는
재즈 계의 메시아로 불리는 존 콜트레인이 이 경향을 보이고 있다.

4. 작품 소개

Solfeggio(1964)는 초기작품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몇 가지 면이 있다.
이 시기로 고려해볼 때 1960년대의 페르트의 모든 작품에서 꼴라쥬 기법과 음열을
사용한 작곡기법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카펠라 코랄 에튜드로 이해된다.

이것은 C장조에 기저를 두고 있다.(솔 파 음절을 적절하게 사용) 옥타브이동의 힘과
다른 피치의 다양한 오러랩핑이 기본 아이디어에 다양한 군집된 음을 야기 시킨다.
이 속에서 우리는 수시로 신비로움과 희망의 삼화음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작곡자가 비밀의 정원을 우연히 발견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자족하여 깨달을 때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Missa Sillabica(1977)는 틴티나불리 스타일의 초기작품으로
텍스트 속에서 페르트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가장 근원적인 중요한 예 중 하나이다.

타이틀로서 적합한 음절적인 음악일 뿐 아니라 각각의 피치가 가사의 음의 길이에
의해서 차례로 결정되어지는 것처럼 들린다. 각각의 악장이 작곡가에 의해서
다양한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다. 유사한 모양으로 텍스트 구조에서 엄격하게
결정되어진 구와 구두법 사이에서 다양한 리듬과 휴지를 가진다.

작곡자는 레코딩 준비 동안에 스코어에 의한 몇몇 중요한 변화를 만들었다.
(특히 확정된 리듬 패턴을 주시할 때) 이 레코딩은 개정판의 세계최초로 보여진다.

Cantate Domino(1977)는 Missa와 같은 골격 안에서 기술적으로 많은 95개의
틀을 가진 짧고 가벼운 춤곡이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의 두 성부들이
각각의 옥타브에서 네 개의 악기 라인을 가지고 있다.

Summa(1977)의 대단한 아름다움은 라틴 credo에서 만들어 졌다.
Summa는 가장 짧은 틴티나불리 작품 중
가장 난해하게 만족을 주는 작품으로 나타났다.

각각의 음조마다 활동성 있게 잘 짜여진 층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외부의 밑에 섞여 짜여져 있다.

De Profundis(1980) 이것은 그의 성악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것 중 하나이다.
다양하게 관련되어 전개되는 기술보다
기본적인 틴티나불리 방법 중 간단한 화음펼침을 확고하게 고수한다.
 
타악기 오르간 남성4부 합창을 위해 편곡된 일부분을 단순 강약의
강세로 표현할 때 처음으로 함께 나오는 4성부의 포인트 앞에
피치와 강약이 점차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갑자기 나타나는 클라이막스보다 오히려 지속적인 인상을 준다.

그 성부는 두 개의 악구이상에서 강한 강약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오르간 페달은 이 부분의
두 번째 부분부터 나오는데, 이미 음악은 다시 피아노 앞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Seven Magnificat Antiphones(1988)는 라틴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진 페르트의
첫 번째 성악곡이다. 페르트는 일곱 개의 작은 섹션을 결합 시켰다.
 
각각의 일곱 개의
작은 섹션들은 음악적 독립체로서 이해된다.
 
 이 섹션들은 "O"모음으로 시작하며 성악편곡,
템포와 강약의 일반적 보폭, 대구 음조의 균형된 패턴으로 창조되었다.
이 음조들의 반복구조는 A를 중심으로한 세 번째 고리들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것은 작품 오프닝 순간 확실하게 들려진다.)

Magnificat(1989)는 페르트의 가장 맑은 작품중 하나이며 대중적이다.
이 음악은 숭고함의 결정체로 표현되었다.
이 작은 대작은 구조속에서의 자연스러움,
가장 유연하고 세련된 틴티나불리 양식을 표현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The Beatitudes(지복, 무상의 행복)(1990)
페르트의 첫 영어로의 접근으로 성가 암송을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이명동음의 패턴 이동은
틴티나불리 음악에서 전례 없이
아주 드물게 보인다.

And one of the pharisees(1990)는 누가복음 제 7장의 내용으로서 3성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합창과 어떤 의미로는
시편 영창과 유사한 솔로낭독을 사용한다.

어떤 것은 아주 마술 같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변형되고, 종교 예배식의 어떤
드라마틱한 정점으로 얻는다. 사실상 이 접근은 중세의 강한 회상이고 복음서의
재현이며, 솔로영창과 대조되는 폴리포니의 한 구절이다. 1992년에 캘리포니아의
Th tre of Voices Festival에서 초연되었다.

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ritten(1976)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벤자민 브리튼을 추모한 작품이다.

Tabula rasa(1976) 깨끗한 서판이라는 뜻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알려진 곡이다.
두 개의 바이올린, 프리페어드 피아노, 현악의 편성이다.

이 작곡가에 대한 음악전문기자의 말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명상과 영성의 컬트 작곡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현대 음악의 아웃사이더였다.
1970년대 후반 수학 공식같은 작곡기법으로 무장해 난해한 음악을 구사하지 않으면
작곡가 대접을 못받는 시절에 중세 음악의 복권을 외쳤으니
컬트 작곡가로 불릴 만도 했다.
 

-오는 23일 발표를 암둔 그래미상에서
 '동양과 서양'(ECM)으로 '베스트 클래식 음반상'
후보에 오른 에스토니아 태생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의 이야기이다.
토누 칼유스테 지휘ㅢ 스웨덴 방송교향악단과 합창다니 녹음한 이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만 봐도 페르트가
세계 음악계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흔히들 페르트의 음악을 가리켜 "영적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른다. 명상과 영성,
초월과 해탈, 관조와 성찰 등의 단어가 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구 물질문명에 대한 환멸, 아방가르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그의 음악은
상처받은현대인의 영혼을 위무하고도 남음이 있다.

-페르트의 음악에서 신의 임재를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종교적 가사가 없는 기악곡에서도 성당의 풍부한 울림이 느껴진다.
그의 음악에서 극적인 드라마나 다채롭고 화려한 소재와 기법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절대 고독과 침묵 끝엔 하나의 음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자아낸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이장직 음악 전문기자

Discography (작품 목록)

-Unser Garten f r Kinderchor und Orchester (1959)
-Nekrolog (1959)
for orchestra
-Oratorium "Der Schritt der Welt" (1961)
-Solfeggio (1964)
-Collage sur B-A-C-H (1964)
for string, oboe, harpsichord and piano
-Symphony No.2 (1966)Collage sur B-A-C-H
-Credo (1968)
for piano solo, mixed choir and orchestra
-Symphony No.3 (1971)
-Wenn Bach bienen gez chtet h tte (1976)
for piano, string orchestra and wind quintet
-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ritten(1976)
-Tabula rasa(1976)
-Missa Sillabia (1977)
-Cantate Domino (1977)
-Summa(Credo) (1977)
-Fratres (1977) -개작 (1988)
for string orchestra and Percussion
-De Profundis (1980)
-Johan Passion (1982)
-Festina Lente (1988)
for string orchestra and harp adlibitum
-Seven Magnificat Antiphone (1988)
-Magnificat (1989)
-The Beatitudes (1990)
-And one of the Pharisees (1990)
그 외 다음 작품들은 자료의 부족으로 작곡 연도가 미상이다.
-Miserere
-Sarah Was Ninety Years Old
-Passio Domini Nostri
-Jesu christi Secundum
-Joannem
-Arbos
-An den Wassern zu Babel
-Pari Intervallo
-Es sang vor langen Jahren
-Stabat M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