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또다른눈

생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하늘타리. 2008. 12. 15. 15:12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 여름의 첫 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가을의 마지막 날.
혼자 와서 혼자 마시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혼자 떠나.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다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마른 꼴 비에 젖어 / 촉촉한 봄 냄새에 / 씰룩이는 젖소 코. // 비포장도로의 아득한 
끝은 / 구름 낀 하늘을 물고 / 흙먼지 위에는 / 빗물 몇 방울.

늘 누군가와 / 약속을 한 듯하여라 / 오지 않을 사람과…… /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 벌써 몇 해째인가 / 계절 사이에 / 걸려 나부끼기를 / 지푸라기 한 올처럼.

외로운 첫 가을 / 달 없는 하늘 / 가슴엔 / 노래 백 가닥. // 비는 먼 바다에 쏟아지고―  들은 바싹 타 들어가고.

논일하는 농부들 노래 / 기뻐도 // 슬퍼도 / 가락은 늘 하나. // 내가 정말 믿는 것  
밤도 / 낮도 / 끝이 있다는 것.

눈밭에 / 발가벗은 아이 천 명. // 한겨울의 악몽. // 바람이 / 울부짖고 / 이리가 / 
울부짖고― / 달은 / 숨었나 / 검은 구름 뒤로.

눈 덮인 벌판의 / 검은 두건 까마귀 / 자기를 보고 놀라다. // 밤은 / 길고 / 낮은 
길고 / 생은 / 짧아.

눈밭에 사람 발자국― / 볼 일 보러 가셨나? / 돌아올까? / 이 길로? // 눈 덮인 / 
묘지에 / 눈 녹는 / 묘비 셋― / 어린 죽음 셋.

생각할수록 / 도무지 모르겠어 / 죽음을 그리 / 두려워할 이유를. // 눈 녹은 물에 / 
저 건너 강 몸 뒤치는 소리 / 다시 들을 날 있을까.

어느새 / 인생 하나 지나와 / 나를 생각하며 우네. // 나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 
잊어 주기를― / 그러나 내가 다 잊을 만큼 / 깨끗이는 말고.
(시=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번역=정영묵] 

'모셔와 가꾼 아뜨리움 > 또다른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nuel Hurtado   (0) 2008.12.15
Michael Ging   (0) 2008.12.15
11 lessons in life  (0) 2008.12.14
흑과 백  (0) 2008.12.14
환상의 지구촌........  (0) 2008.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