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의 밤과 아침, 그리고 남천교 청연루지나 남고산성마을까지
전주 한옥마을내의 정담민박입니다.
체크 인을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사진...
최불암씨가 여기서 숙박을 했거나 촬영이 있었나 봅니다.
주인이 자랑스럽게 걸어놨습니다.
시간이 꽤 늦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갈곳은 없지만 야간 산책이라고 할까요.
숙소 문을 나오니 최명희길 표지가 있습니다.
달이야기까페
ㄹ자가 참 인상적이지요.
여기는 민박. 일락당
여기도 민박. 박가네민박이네요.
잠깐 앉아주는 센스...
茶花院. 여기는 쌍화차가 맛있는 집인데...
다시 일락당 앞으로 돌아와
전주최씨 종가터
여기 심어진 은행나무 덕분에 이곳 길이 은행나무 길이라고 불립니다.
동학혁명기념관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995년 5월 31일에 건립한 기념관
동학혁명과 주요 인물에 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교동 떡갈비집
한옥 마을에 많은 떡갈비집 중 번호표들고 기다리는 몇집 중 하나
까만 밤 문밖에서 간판만 보고 예전 기억을 되살리다가 ...
심드렁해져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억지로 라도 잠을 청하고 아침에 뵙겠습니다.
가방을 꾸려 방문밖으로 꺼내 놨습니다.
오늘 오후에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메고 다니는 것 보다 이집에다 맡겨두고 남고산성을 다녀오려 합니다.
방을 비워줘야 하니까 가방은 미리 꺼내어 놓아야지요.
문밖으로 나와...
한옥마을거리를 지나갑니다.
당산나무로 왔습니다.
일단 인사를 드리고
전동성당을 보고
원불교건물도 보고
다시 골목을 지납니다.
남천교 청연루까지 왔습니다.
남천교는 3개의 무지개 아치가 있는 다리로 2009년 전주시가 옛고지도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복원한 다리이고
청연루는 그 다리위에 세운 한옥누각으로 유일한 다리 위 누각이라고 합니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전주천을 봅니다.
남천교에서 남으로 넘어오며 본 주유소옆 건물. 상호가 모두 무궁화입니다.
모두 한사람의 가게가 아닐텐데 드문일인듯 싶네요.
서학동성당
한때 천주교 전국사제단 상임대표인 문규현신부가 주임신부로 계시던 성당인데
성소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질 못했어요.
처음 경험하는 일입니다.
땡땡이 신자이지만 여행중 만나는 성당에는 꼭 들어가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는데
천주교성당이 낮에 문잠겨 있는 경우는 처음이에요.
이제는 우리 천주교도 이렇게 가리고 숨길게 많다는 것이지요.
성가족상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며 돌아섭니다.
성가족상중 어느 하나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군요.
먼발치로만 성모님을 뵙습니다.
여기서도 성가족상의 시선은 지나가는 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전주교육대학
항일학생운동기념비
그 옆 신동엽시비
전주에는 이런저런 길이 참 많아요 겹치고 겹치고, 한군데가 몇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정비를 좀 하는게 좋을텐데...
여기는 도란도란 시나브로길 코스안내도
많은 부분이 천년전주마실길과 겹칩니다.
시나브로길을 걸어갑니다.
산성마을입니다.
낡은 담벼락과 셔터에 벽화를 그려넣었습니다.
샛길, 골목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간판을 정비하고 ...
손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
산성천건너 서쪽의 가옥들은 철거하고 있습니다.
골목안으로 들어가서 미래에 대한 꿈과 사랑이 넘쳐나는 백학교회를 봅니다.
담임목사님이 배움에 한이 되 버린 사람들을 위해 30년째 야학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야학은 골목을 더 들어가 조금 더가야 합니다.
한때의 생명수
이 물을 지금도 사용하는지 궁금하네요.
충경사
당연스럽게 문이 잠겨있어 담장너머로 카메라를 번쩍 들어올려서 찍은 사진입니다.
충경사에 관한 공식설명을 옮깁니다.
"충경사는 충경공 이정난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충경공 이정난은 중종 24년(1529)에 전주에서 태어나 선조 원년(1568)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임진 왜란이 일어 났을 때에는 이미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
러나 이정난선생은 전주에서 7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전주성의 4대문을 수비하는 한편
남고산성과 만경대등에 복병을 배치하여 침입해 오는 직장 고바야가와의 왜적을 물리쳤다.
정유재란 때에는 전주부윤 겸 오늘날의 징병관이라 할 수 있는 삼도 소모사로 있으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의 어려움을 돕는 일에 힘썼으며 선조 33년(1600)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후 순조 7년에 조정에서 충경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지금까지 공의 우국충절을 기리며
공의 제를 올리는 곳이 이곳이다."
산성마을 집들
작년도인가에 '도란도란 시나브로길'을 만들때
이곳 마을 여기저기 금가고 얼룩덜룩 했던 담장 위에 아름다운 벽화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서학로 서학파출소를 시작으로 남고산성길까지 총 1.5km에 걸쳐 낡은 주택 담장 36곳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14명이 참여해 벽화를 완성했습니다.
아름다운 벽화로 남고산성으로 가는 길이 많이 즐거워 졌습니다.
일반 가정집의 담 모퉁이에 붙어 있는 남고산성표지석을 만납니다.
전주시청 홈피에 들어가면 남고산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주남고산성은 전주남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고산의 자연형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산성이다.
후백제때 처음으로 쌓여졌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산세나 지세로 봐서 그 이전부터 성터였을 가능성이 많다는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고덕산 줄기에 쌓아 놓은 이 산성은 조선왕조 순조때 수축하여 남고종을 두었다.
이 성은 효종때 설치했다는 중진영과 숙종때 쌓았다는 위봉산성과 함께 향토방어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 산성 안에는 현 남고산 앞쪽에 남장대 뒷편에 북장대를 두고
남장대 아래 서쪽 골짜기에는 군기고와 화약고 등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산성별장 1명에 장관22명을 비롯 군인 1천 4백여명이 주둔했다고 하니 규모의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남고산성의 평면은 불규칙한 제형을 이루는데 중앙의 북측에 위치한 각이 267.5m 높이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수구가 있는 서북변은 자연규암층을 이용하고 있다.
남고산에는 남고사를 비롯한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앙의 만경대 남쪽 벼랑에는 고려말 충신인 정몽주가 쇠퇴해가는 왕조의 한을 읊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또한 만경대의 수령 5백년된 만인송은 바위틈에 자라면서 오랜 흥망속에 정절을 지키고 있다. "
그리고 여기에 있는 남고산성 표지석도 한번 읽어보시지요.
왼쪽으로 가면 남고사로 바로 가는 길이니 서전교회앞을 지나 서암문쪽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문 좌우 울타리가 탱자나무이길래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계속 잘라가나 봅니다.
주인이 열받아서 목격자를 찾습니다.
제보자에게는 후사하겠답니다.
오른쪽은 천경대
왼쪽은 만경대, 억경대
숫자가 작은 천에서 부터 시작하려고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천경대로 가는 성벽에 왔습니다.
올라가지 않고 몸을 뒤로 돌려 서암문쪽으로 갑니다.
서암문지
성벽을 따라 올라갑니다.
뒤돌아 삼경사를 한번 보고 만경대방향으로 오릅니다.
정몽주암각서를 먼저 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