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완도, 그리고 해남 달마산 미황사
해남 달마산을 가기위해 집을 나섭니다.
달마산을 다시가는 것도 기쁘지만..
남도의 가장 아름다운 절집인 미황사를 다시 찾을 수 있음이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일천 부처의 장엄한 모습을 떠올리며 길을 나섭니다.
제주신항 국제부두
아직 시간이 있어 주변을 어슬렁거려봅니다.
배에 탔고...
출발합니다.
잘 다녀오라며 한라산이 배웅합니다.
선실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맴돌다
벽면에 걸린 한라산 사진 한장 찍어보고
내모습도 찍어보고...
갑판위로 나와 기대어 서있으니 완도 앞바다의 섬들이 마중을 나옵니다.
빙그레 웃는(莞) 섬 완도는 1968년에 완도대교가 생긴 뒤부터는 섬이 아닙니다.
그 완도 곁에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200여 개가 있고 60여개의 섬에서 사람이 삽니다.
안녕!하고 인사하고 바로 사라져가는 섬들을 봅니다.
...섬들이 꿈틀댄다.
잠 덜 깬 바다 속으로 물김 되어
가라앉아 저 너른 새벽 어장에 먹물 풀어 편지 쓴다.
...
사철 내내 요란한 엔진 소리 끌고 간
아버지의 낡은 배는 걸쭉한 노래 뽑았다.
그 절창이 섬을 휘돌아 해를 집어 올린다.’
박현덕의 ‘완도를 가다’에서
오른쪽으로 신지도가 보이고 전방으로 완도가 보입니다.
신지도.
모래가 십리에 걸쳐 울음을 우는 명사십리鳴沙十里가 있는 곳입니다.
모래가 바람과 파도에 씻겨 이리저리 뒹굴며 웁니다.
밤새 뒤척이며 나직히 울기도 하고, 큰 바람이 불면 구슬프게 흐느낍니다.
당겨 불러 봅니다만 도도하게 버티며 찾아오랍니다.
완도항으로 입항합니다
기다리고 있던 전세버스를 타고 장보고동상앞을 지나갑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아마 업진봉일겁니다.
숙승봉인가?
완도대교를 넘어가기전 전면으로 두륜산 가련봉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럼 왼쪽 봉우리는 대둔산이 되겠지요.
완도대교를 건넙니다.
달도를 지나 남창교를 넘어갑니다
월송리로 가는 길 오른쪽 전방으로 멋진 봉우리 하나가 폼을 내고 있습니다.
월송자동차여객터미널
달마산을 북에서 남으로 종주하려 대중교통을 타고 오면 여기서 내려야지요.
각종의 방법을 동원하여 히치를 하여 닭골재로 가던지, 송촌마을로 가서 출발을 하거나
여기에서 바로 바람재로 올라가 관음봉을 경유하여 해남 땅끝까지 이어지는 땅끝기맥을 걸어갑니다.
버스는 왼쪽으로 보이는 달마산 산줄기를 따라 달려갑니다.
미황사주차장에 차를 세웁니다.
달마산 산행에 앞서 그 보다 더 보고싶던 미황사로 들어갑니다.
미황사 절집뒤로 달마산이 팔을 넓게 펴고 있습니다.
이곳 미황사(美黃寺)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1692년에 세워진 사적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땅끝에 도착하였는데
의조화상과 향도 100여 명이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의 절을 세웠다고 하네요.
창건 이후 미황사는 조선 중기까지 12암자를 거느린 대찰로 번성하였다가
1597년 정유재란을 겪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1601년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1989년까지 주인없이 비어있었답니다.
자운,현공,금강스님이 이 비어있던 미황사에 오셨을때는 대웅전과 응진전만 형태가 남아있었고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 달마전, 부도암등은 흔적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후 계속 복원 및 중창을 한 것이지요.
어 그런데 자하루를 지나는데 임시대웅전이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럴수..럴수.. 이럴수가...
대웅전이 수리중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들이 이쪽으로 옮겨와 계신 듯합니다.
그러면 대웅전 천정의 천불도는 보지 못하는 건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대웅전에 왔습니다만...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를 않네요.
보물 제947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1982년에 보수 공사 중 발견된 1754년에 성된 대법당중수상량문에
응진전과 함께 1751년에 중수되었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에 씻겨 건물 외부의 단청이 지워지고
나뭇결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약사여래불의 목조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천장에는 범어로 쓰여진 글자와 곳곳에 그려진 천불의 부처님이 계십니다.
들어가 보질 못하니 공허한 이야기이지요.
미황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배를 상징하여 주춧돌에 새겨진 게와 거북이를 찾아 봅니다.
서기 749년인 신라 경덕왕 8년 어느날 의조화상에 꿈에 어느 황금빛 도인이 나타나더니
'모월 모일 어디로 돌배가 불상과 불전을 실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소에 등에 실고 그 소가 가는곳까지 가다가 그소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그곳에 절을 모셔라'고 하더랍니다.
꿈에 계시된 바로 그날에 돌로 된 배 한 척이 땅끝 사자포구에 와 닿았답니다.
그 안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과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16나한 등 불상이 가득했다고 하네요.
그때 어디선가 소 한마리가 나타났고,
사람들이 그 소의 잔등에 경전을 실자
그 소는 뚜벅뚜벅 한나절 정도 가더니
어느 한 곳에서 길게 한번 음메하고 울더니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곳에 절집을 지어 경전과 불상을 모셨고 절집 발치에 소를 묻어 주었다합니다.
절집이름인 미황사의 美는 소의 '음메∼'하는 울음소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고,
黃은 스님의 꿈에 나타나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불경을 모시라'고 알려준 金人의 황금빛을 딴 것이라고 합니다.
소가 묻힌 지역을 牛墳里라 하였답니다.
그 돌배를 따라 왔다는 게와 거북이를 주춧돌에 형상화하여
이 대웅전이 바다를 건너온 배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불교 전래의 반야용선임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응진전으로 갑니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 아난, 가섭존자가 모셔져 있고
16나한상, 인왕상, 시자상, 동자상 및 불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스님들의 공간을 흘깃 보고 대웅전 옆의 명부전으로 갑니다.
지장보살과 10대시왕께 인사드립니다.
향적당을 새로 지었군요
옆으로 나 있는 길로 해서 바로 불썬봉으로 갈 수 있는데
일행중 몇몇이 절집으로 들어오질 않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등산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절집과 뒷산의 조화에 눈을 떼지못하고 뒷걸음치듯 내려가며 절집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