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충숙근린공원 (충숙공忠肅公 이상길李尙吉 묘역)

하늘타리. 2013. 3. 24. 18:54

아무리 노원이라지만 그래도 서울인데...

 연탄재로 도로결빙대책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경제적이긴 하겠구나 생각하면서

현위치 표시가 잘못 된 듯한 산행안내도 옆 충숙공원으로 갑니다.

현위치가 가운데 빨간점이 아니고 오른쪽 빨간점이여야 하는 것 이닐까?


하여간 그 옆 대진고교 사거리 인근에 충숙근린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 충숙공(忠肅公) 이상길(李尙吉, 1556~1637)의 묘역입니다.

묘역 입구에 이상길의 영정을 모신 충영각(忠影閣)과 사당인 동천재(東川齋) 등이 있는 데

이곳은 그 입구만 보고 , 담 위로 넘겨다보고 쪽문이 열려있는 묘역으로 갑니다.  

 

  

  

 

 

 

 

 

 

 

 

 

묘역 앞에는 신도비가 있고, 신도비 뒤 선산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상길의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동천(東川)으로 선조 18년(1585) 문과에 급제하고

광주목사. 호조참의. 평안감사 등의 벼슬을 지냈습니다.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그는 남원으로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 병조참의 등을 거쳐 공조판서 벼슬을 하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로 몽진하자 그는 함경도에 가서 수복을 도모하자고 주청하였다고 합니다.

1597년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병력을 이끌고 남원에서 싸웠으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와 사직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듬해 1월 목을 매어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효종 8년(1657)에 충숙공(忠肅公에 봉해졌으며 이후 강화도의 충렬사에 배향되었습니다 

 

인조는 그의 충성됨을 교서를 내려 표창하고 정려와 시호를 내렸으며, 좌의정에 추증했습니다.

동대문 밖 노원에서 거주한 연고로 현재 위치에 묘역이 조성되었으며,

현종 2년(1661)에 세워진 신도비는 대좌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개석을 얹은 간략한 형태입니다.

 

비문은 우찬성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이 썼는데

당시 최고의 지성이 참여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비문의 주인공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려와 성의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선조~인조 때에 올곧은 행동으로 일관했던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다 하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봉분은 쌍분으로 부인 경주 이씨(慶州 李氏)와 함께 있습니다.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불을 세웠으며, 봉분주변(護石)은 근래에 둘렀다고 합니다..

 

 뒤에는 그의 부모의 묘가 있습니다.

 

 

주변 일가들의 묘역도 돌아봅니다.

 

누군가의 묘.
한기는 부부쌍분이고 한기는 비석을 따로하여 또 다른 부인이 혼자 누워계십니다.

 

후손들이 세분을 함께 기록하여 묘비를 새로 만들었는데 마땅한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문득 생각난 비석하나...

 이상길의 동생 충강공 이상급의 묘역은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에 있습니다.

이상급은 병자호란 때 형을 찾으러 나섰다가 도중에 청나라 병사에게 살해되었다고 대부분의 자료에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인조실록에는 그가 동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제도(諸道)의 군사를 파하여 보냈다.

산성에 머물고 있던 백관이 경사로 돌아올 때에 길에서 적병으로부터 약탈을 당했는데,

병조 참지 이상급이 길에서 얼어 죽었으므로 상이 염습하고 장사지낼 기구를 내리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직접 사후 처리를 명령하는 것으로 보아,

국가 종묘사직의 보존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이상길의 동생 이상급의 묘역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상급의 신도비 형태가 유교 석조물로는 다른 곳에서 그 형태를 볼 수 없는 팔각형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비신과 이수로 불리는 비의 머리 부분이 이른바 통돌로 된 경우도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신도비는 보통 받침돌(대석)-몸체-이수(머릿부분)로 구성되어 3개의 석부재로 구성되나

이상급 신도비는 통돌을 깎아 몸체와 이수를 한꺼번에 조각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이수의 경우 두 마리의 용을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 생동감이 넘쳐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신이 팔각형인데 비해 이수는 사각형 모습으로,

이 또한 공정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가보기가 힘들것 같아 추가로 기록하고

향토문화대전사진 한장 참고로 올립니다.

 

아까의 안내판 앞으로 돌아가 산으로 들어갑니다.

Christian Sinding (1856 ~ 1941) Suite for violin & orchestra in A Minor, Op 10 Suite in the Old Style

2. Adagio  ,1. Presto  ,3. Temp giu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