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례길 2구간 6. 비봉면사무소에서 천호성지까지
11월 13일 오전 9시
어제 저녁 히치하이크한 지점으로 다시 왔습니다.
어제 지나간 것은 맞습니다만..
어두운 저녁에 지나가다 보니 본 것도 느낀 것도 없지요.
말로는 다시 오마하지만 아니 가본 곳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오기는 힘들듯 합니다.
그래서 이 부근에 있을 때 제대로 보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다시 왔습니다.
순례길을 다시 걷습니다.
문장마을 버스 정류장
이 부근 마을이름은 거의가 앞 뒷말이 수식이 잘 않됩니다.
이 마을도 文長마을이라는 데 글이 길다? 즉 학문에 관한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알았는데
문암이라는 마을, 양동이라는 마을, 그리고 장곡리마을을 합치면서
문암에서 문, 장곡리에서 장을 따와서 문장마을이라 한답니다.
가장 편리한 방법이면서 마을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지요.
비봉면사무소 앞을 지납니다.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고산군 서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부를 떼어주고 병합하여 비봉산의 이름을 따서 비봉면이라 하였습니다.
장승에 쓰여 있길 봉황이 날던 마을 비봉이라 합니다.
또 다른 장승 한쌍은 우리콩두부대장군과 여장군입니다.
이곳 특산은 비봉수박이지요.
완주 8품중 하나라고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완주 8품이 다 이름나 있는 것이네요.
봉동 생강과 포도, 이서 배. 삼례 딸기, 경천 대추, 상관 표고, 동상 고종시 그리고 비봉 수박
한번쯤 먹어보거나 들어보기는 한 이름들이지요.
이제는 우리콩에도 관심을 가지고 양질의 두부를 생산하나 봅니다.
나 순두부찌개 참 좋아하는데....
아침을 먹고 왔으니 오늘은 패쓰..
비봉교회
66년 된 교회라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잘 들어가질 않습니다.
항상 성전문이 잠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재산이라 한번 험한 꼴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이름이 순례길 노정도에 나와 있어서 문이 열려 있나 하고 문을 열어보니
외문은 열려 있는데 역시 성전문은 잠겨있습니다.
성전문 옆 벽에 붙여있는 아마도 성전건립초기일듯 싶은 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돌아 나오면서 옛 사진 당시 기둥인 듯 하여 한 장 더 찍습니다.
비봉공소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지붕은 무너져 내렸고 집기들은 밖으로 다 나와 있습니다.
문이 열려서 들어가 봅니다.
내부도 폐허입니다.
벽면에 몇 장 남아있는 14처를 표시했던 쪽지의 일부만이 이곳이 공소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창문이 없어진 창을 통해 옆에 있는 집을 봅니다.
저곳도 처마 밑에 종자로 쓸 마늘은 걸려있는데 이곳보다 더 먼저 폐가가 된 듯합니다.
공소와 이어진 건물전체를 봅니다.
옆 식당과 가게도 문을 닫았습니다. 아직 열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너무 스산합니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 왼쪽으로 이어진 골목을 가봅니다.
예전에 피아노를 가르쳤던 가정집을 지나 반사경 앞에서 나를 찍는다고 찍었는데 ...
나무만 커다랗고 나는 어디 갔나요?
몸을 돌려 파출소와 교회를 보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초등학교 앞을 지납니다.
다시 순례길로 갑니다.
고흥유씨종산동구를 지나
민들레동산으로 갑니다.
뒤돌아보니 가야할 천호산이 이미 지나온 쪽 성뫼산과 함께 보입니다.
하천 건너에 민들레동산 건물이 보입니다.
노정도에 표시되어 있는 곳이라서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천호천을 넘어갑니다.
민들레동산
2009년 기업은행 부행장으로 퇴직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고흥 유씨 문중 어느 분이
몸에 좋은 민들레를 깨끗하게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큰 사업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민들레는 염증제거, 지방간 등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한때는 나물로도 많이 무쳐먹던 음식이기도 합니다만 최근에 우리가 보는 민들레는 거의가 노란색의 서양 민들레이지요.
개발로 인해 환경이 파괴됨으로서 토종 민들레들은 사라지고
수입양곡과 사료 등에 끼어 들어온 서양민들레가 엄청난 세력으로 영역을 넓혀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들레는 봄에 한 번밖에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서양민들레는 일 년 내내 언제라도 꽃을 피우고, 또 몇 번이라도 꽃을 피우면서 씨앗을 만들어 냅니다.
게다가 우리 민들레는 다른 개체의 수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이 파괴된 도시 공간에서는 가루받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자꾸 개체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는데 반해,
서양민들레는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클론 유전자에 의해 씨앗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루받이 상태가 없어도 스스로 씨앗을 맺어 번식을 합니다.
민들레의 약명이 蒲公英이고 아홉 가지 배울 점이 있다고 하여 九德草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포공구덕(浦公九德)을 배우라며 옛날 서당 마당에는 민들레가 제법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忍, 剛, 禮, 用, 情, 慈, 孝, 仁, 勇
그리고 일편단심의 상징입니다.
서양 민들레는 주변에 날아다니는 꽃가루를 전부 받아들여 수정하지만
토종 민들레는 처음 받아들였던 개체의 꽃가루가 아니면 절대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 일편단심이 불행히도 사라짐의 원인이 됩니다.
이곳 민들레 동산에서 가게는 있고 어떤 상품으로서의 민들레는 있는데
자연의 민들레는 볼 수가 없네요.
어디 딴 곳에서 키우는지 아니면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가 봅니다.
남의 개인사업장에서 살 것도 아니면서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는 것도 예의는 아닐 듯해서 지나갑니다.
아무리 민들레가 좋아도 이곳 민들레동산은 개인 사업장인데
왜 순례길 코스 노정에 활자화되어 들어가 있는지는 이해가 않됩니다.
박노해의 시로 만든 노래가사 읊조리며 천호천을 다시 넘어 옵니다.
민들레 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 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할 저 고난의 길에
온 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 처럼
특별하지 않을 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 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 만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 희망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
소공원이 있는데...
여기 주변에 토종 민들레를 많이 심어서
아까 그 개인사업장에 가지 않아도 지나가는 모든 이가 토종 민들레를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아름다운 일 아닐까요?
일문구의사사적비
유광(柳洸)의 처 한씨의 열녀각
柳夢寅의 於于野談 人倫篇 孝烈에
韓氏吾侄柳洸妻 而韓克謙之女也 避寇楊州洪福山 望見倭寇入前山櫛耨林藪 覓子女財寶 繫頸林木而死
寇退一家皆聚 得韓屍於林木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유광의 처 한씨가 왜구를 피해 양주의 홍복산에 있었는데
왜구가 앞산에서 부터 샅샅이 흟어오자 숲속 나무에 목을 매어 죽어서
왜구가 물러간 후 시신을 거두어 들였다는 것이지요.
정치와 국방을 책임졌던 사람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열녀비 하나 세워주고 할 바를 다 한 듯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인의 효열각
보고 잘 따라하라는 강요아닌 강요입니다.
장승공원
이종무를 도와 대마도를 정벌한 유습에 관한 기록입니다.
봉양서원 가는 길
봉양서원에 배향된 월곡 유흥종선생행장비
유습선생 신도비
봉양서원가는 길
봉양서원은 코스를 벋어나 오른쪽으로 가야합니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커다란 비가 서 있습니다.
당연히 고흥 유씨 문중의 어느분 것이려니 하고 읽어 내려가다가
문숙사가선생황공신도비라는 부분에서 아 그렇지 합니다.
조선개국 원종공신 황거중의 신도비입니다.
황거중은 우주 황씨로,
늙어 고향으로 내려와 꽃, 사람, 거문고, 시를 벗 삼아 즐겼다 하여 사가四佳선생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돌아가 은거했다는 고향 우주紆州가
지금의 완주군 봉동읍, 삼례읍, 익산시 왕궁면 일대입니다.
우주현은 전주시 북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백제 우소저현于召渚縣이란 곳이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이 우주로 개칭해 익산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고려시대 때 다시 전주에 속했지요.
우주현으로 불리던 옛날에는 현재 익산나들목 부근에 현청이 있었으며,
그 곳 앞 까지 서해 바닷물이 들어와서 최초에는 굽을 우紆자와 물가 주洲자로 표기 했었지만
조선시대 경에 바다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물가 주자를 고을 주州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봉양서원으로 올라갑니다.
주차장의 안내문이 번쩍거려 잘 않보입니다.
주차장에서 유습의 묘가 있는 산기슭을 바라보고
몸을 돌려 서원으로 갑니다.
봉양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김집(金集, 1574~1656년), 김집의 제자인 관곡寬谷 최서림,
월곡月谷 류종흥을 배향하고 있는 곳입니다.
1701년(숙종 27)에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동쪽 지역에 용계서원龍溪書院으로 창건되었으며
최서림, 김만정, 유종흥, 은정화, 김집, 한백유 총 6명의 선현을 향사하였습니다.
이후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6년에 현재의 위치에 봉양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우를 건립하며 세분을 향사합니다.
봉양서원
사우의 외문
서원강당
서원중수기
사우인 봉양사
사우의 외문에서 본 서원
서원이 기능을 않하니 강당 지붕이 다 무너져 갑니다.
건너편 고흥 유씨 문중 묘역
다시 보는 황거중선생 신도비
황거중선생 신도비옆 三賢祠입니다.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의 문신인 유몽인, 유숙, 유중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입니다.
최초 삼현영당三賢影堂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는데 언제 세워지고 언제 훼철된지는 알 수 없으나
1958년 이 지방의 고흥 유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덕수문德修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통과하면 영모재永慕齋가 정면에 있고,
그 왼편으로 사우가 있습니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어우야담', '어우집' 등의 문집을 남긴 설화문학의 대가입니다.
왕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는 세자시강원문학이었으며,
광해군 때 예조참판·이조참판에 올랐다가 인조반정 후 대역모사건에 연좌되어 아들 유약과 함께 사형되었습니다.
정조 때 복권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유숙(柳潚 1564~?)은 유몽인의 조카이며 덕행과 충효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유중교(柳重敎 1821~1893)는 '태극도설', '대소학설'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마을의 살림집들은 상당히 노후 되어 있습니다만
재실들의 외관은 낡았어도 정갈합니다.
우주 황씨 춘우재를 지나고...
우주 황씨 삼치재
이곳이 황거중선생 재실입니다.
삼치라는 것은 제사를 지냄에 있어 첫째, 평소 미치지 못했던 ‘봉양’에 이르러야 하고,
둘째, 다하지 못한 ‘효’에 이르러야 하며,
셋째, 淡然純一한 ‘마음’에 이르는 제사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삼치재 왼편으로 강당이 있습니다.
선생의 묘소는 사우뒤 산중턱에 있다고는 알고 있으나
그곳까지 가는 것은 너무 오버인 것 같아 가던길을 갑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고흥 유씨 유습과 진천 송씨 송선문은 우주 황씨의 사위입니다.
그때 부터 유씨와 송씨가 이 부근에 많이 살게 되었는데....
막상 우주황씨의 종손은 단종2년 어떤 이유에선가 죽임을 당한 후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마을의 들과
살림집
또 다른 재실하나를 지납니다.
고흥 유씨 호수재
이 마을을 재실마을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느바기를 따라가며 마을을 둘레둘레 둘러봅니다.
젖소
젖소를 닮은 두마리 견공
그중 한놈은 적의를 들어내며 엄청 짖어댑니다.
내가 뭘 어쨌는데...
또 다른 한놈이 조용히 다가왔다 민망한지 멀어져 갑니다.
곶감으로 발을 만든 모습이 계속 됩니다.
마을 골목을 지나 큰길로 나왔습니다.
천호성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문드러미재
꼬불꼬불 넘어가는 차들이 여산으로 갑니다.
천호성지를 향해 오른쪽으로....
이번 오른쪽은 수봉산 가는 길
이번에는 직진 다리실 길...
천호성지입구의 순례길 3코스 안내도
성지입구
성지 안내판을 지나
토마스 쉼터 입구를 지나며 토마스와 그 가족을 위로하며 걷다가
실로암연못을 봅니다.
예수님이 팔 벌려 환영하십니다.
성지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실로암연못 방죽을 따라 갑니다.
대나무 숲길인 로사리오길을 걸어 성모님을 뵙습니다.
부활성당쪽으로 올라갑니다
휴게소와 식당을 겸하는 순례자의 집
잠시 쉬며 나의 2구간 답사를 종료하고 3구간 답사를 시작하는 조촐한 축하커피한잔을 하려 했는데...
단체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는 듯해서 그냥 옆에 성물판매소만을 둘러 봅니다.
부활성당으로 갑니다.
부활성당앞 성모님
그 옆으로 앉을만한 바위가 있습니다.
잠시 쉰 뒤에 부활성당으로 들어가면서 3구간 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으며 순례길 2구간 답사를 종료합니다.
Fernando Sor
Introduction and Variations Opp. 26-28
1. '한 떨기 풀이 되고 싶어라' 서주와 변주
2. '친절한 호서드' 서주와 변주
3. '말보로' 서주와 변주
Jeffrey McFadden, Gui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