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아름다운 순례길 2구간 2.오도천을 거슬러 오도재까지

하늘타리. 2012. 12. 15. 21:45

 송광사앞 다리를 다시 건너와

송광사를 다시한번 보고

 

아쉬움에 힐끗거리며

 

절에 대한 아쉬움인지

오늘 올라가지 못한 종남산에 대한 아쉬움인지

그 대상을 모를 아쉬움을 지닌채 

오도천을 거슬러

 

태흥리 마을을 지나갑니다. 

 

마을 노인회관 2층에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로 올라가 봅니다.

 

여기서 보이는 저산이 아마...

 송곳재넘어 원등산가는길 612봉일겁니다.

언젠가 율치에서 원등산을 올랐다가

612봉을 거쳐 귀곡산과 귀뚤봉을 거쳐 위봉산성으로 내려간 기억이 나네요. 

원등산을 오르다 원등사라는 절집을 만났는데...

신라문성왕 2년에 보조선사가 지었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후 진묵대사가 주석하셨다고 안내판에는 쓰여있는데

석굴법당도 그렇고 모두 최근의 애매한 모습만 보여주어 황당했던 기억도 나네요..

 

 여기는 오도천 건너 송광사가 그 기슭에 있는 종남산

종남산이란 이름은 송광사를 세운 도의선사가

절터를 구하기 위하여 남으로 내려오다가 이 곳에 이르러

땅 속에서 깨끗하고 풍부한 영천수가 솟아 오른 것을 발견하고는

큰 절을 세울 곳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남으로 내려가는 길을 포기했다는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송광사에서는 풍부한 용천수를 보지 못했고

예전에 송광사 서북쪽 보이스카웃 야영장에서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영천수가 나와

훈련장의 음료수와 풀장 용수로 쓰고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나네요.

 

느바기.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가라고 이길의 상징인 달팽이를 느바기로 부른답니다.

앞에 두마리, 멀찍이 떨어져서 한마리..

 

한참을 포장도로를 걷다보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유혹을 받습니다.

여기로 올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귀뚤봉이 나오겠지요.

 

건너편 종남산을 한컷에 담아보고..

 

왼쪽으로 오성제 제방이 보입니다.

곧 갈림길이 나올텐데 계속 걸어온 포장도로에..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위봉폭포를 보고

위봉사를 거쳐 위봉산성옆을 걷다가 되실봉을 만나 쉬었다가,

 서래봉지나 오도재로 가면 그 길에서 순례길을 만날 수 있으니 그리 가자고

마음속 누군가가 계속 유혹합니다.

 

아니다!

이 바위처럼 굳은 심지로 정해진 순례길로 가자 .

 

왼쪽길, 오스갤러리 방향으로 접어듭니다.

 

제방 가운데 소나무 

어느 분의 수목장지입니다.

 

그 나무 옆에서 오성제를 봅니다. 

누구는 연못이라고 오성지라 하고 누구는 방죽이라고 오성제라 합니다.

 

흐르는 내를 막았으니 방죽이라고 봐야 겠지요.

 

 

주변 몇장을 더찍고

 

 

 

 

오스갤러리로 들어 갑니다. 

 

 

 

 

 

 

1900년도엔가 이곳에 자리잡은 화가가 

 마련한 문화공간입니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갤러리와 서양식 건물이 너른 대지 한 곁에 잘 어울러져 있습니다.

 

갤러리를 둘러보고

 

 

 

 

 

 

 

 

 

까페로 갑니다.

 

2층으로 올라갔다가 좀 답답한듯 하여 바로 내려옵니다.

 

손님이 나뿐입니다.
차를 마시러 오기에는 시간이 조금 이르지요.
혼자 분위기를 잡아봅니다. 

창밖도 아름답고
삼면의 창의 크기가 다 다른게 언발란스인것 같으면서도 조화가 잘 되어 있는 듯하여
사진을 찍다가
여종업원에게 한소리 듣습니다.

조금 황당하네요.
아까 갤러리에서는 직원에게 후레쉬쓰지 않고 몇장 찍는 것을 허용받았는데
여기 까페에서는 그 조차도 안된다...


운암에도 어디에도 오스카페를 개점했다더니

먹거리장사차원에서 인테리어가 영업비밀인가 봅니다.


민망해져서 케이크와 커피 취소하고 돌아나옵니다.


종업원이 힐끔 쳐다 보길래 공연히 갤러리쪽을 한번 더 찍습니다.

여기는 네가 뭐라 못하지...
아이고 나도...

참 유치하기는...

 

다시 길로 나섭니다. 

 

또 다시 공그리길입니다.

 

방죽을 다시 한번 보고 

 

오스갤러리 뒷문.

훌쩍 나오느라고

오스의 명물 차우차우도 못보았다는 생각에 다시 들어 가려다가..

이리 들어갔다가 또 한소리들으면
나 완전히 돌아버릴것 같아서...

 돌아섭니다.

 

방죽안의 잔잔한 물을 보며

 

마음을 잔잔히 하고...

 

수양산 기도원과 그 뒤 서방산을 봅니다.

 

보이스카웃야영장에서 종남산을 올랐다가

저곳 서방산을 지나 오도재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하천변으로 내려가 봤다가

 

그냥 다시 올라옵니다. 

 

양쪽 산기슭사이로 주욱 가는 것이 아니고 임도로 가는 군요.

 

느바기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갑니다.

 

 

 

되실봉이 기웃거립니다.

 

 

되실봉을 갈수 있는 길

보기만하고

 

밀려내려온 너럭들 옆을 지납니다.

 

 

계속 옆에서 지켜봐 주는 서방산

 

 

꼬불탕 돌다보니 저아래 종남산이 다시 눈앞에 나타납니다.

 

오늘 사방댐을 세번째 지나나?

사방시설은 산사태 발생 자체를 막거나,

산사태가 나더라도 토석류를 차단해 생활공간의 피해발생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림청에서는 산사태 등 토석류를 사전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금년 초부터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사방댐 1000곳과 계류보전사업 600㎞ 이상을 설치하기로 하고

올해 우선 2300억원을 투입했다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인데
볼때마다 마음이 않좋습니다.

사방댐마다 대빵 큰 기념비를 만들어 놓은 것도 쓸모없는 예산의 낭비인듯하고...


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댐이 물흐르는 길 위아래를 직선으로 단절하여

댐 아래쪽 생명들이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토끼던 고라니던 어떤 동물들이 가물어서 물이 없으때 구덩이에 고여있는 물을 먹으러 내려간다면

결국 그 안에서 갇혀있다가 큰비와서 큰물내리면 떠내려가다 변을 당할 겁니다.

 

옛 사람들은 수로에 보를 쌓아도 어도를 만드는데

요새 사람들은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걷기는 위봉산의 되실봉과 서래봉이 이어진 능선 밑을 걷는데...

 

보기는 계속 서방산을 봅니다.

서방산 저 뒤쪽으로 내려가면

봉서사라는 절이 있고 진국대사 부도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봉서재쪽으로 더 가면 진감국사 유적지가 있지요.


봉서사라는 절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어 고려때 보조국사가 중창하였다고 하고

이 일대에서는 숱한 이적으로 유명한 고승 진묵 일옥(一玉)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수도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태조 어진을 봉안한 전주 경기전의 비보사찰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이 군부대 훈련장이라 어수선하기도 하고

과거의 흔적은 부도전의 제일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진묵당 일옥이라고 하단에 쓰여진 팔각원당형 부도뿐이 없습니다만

계속 중창하면서 진묵대사 탑을 세우고 진묵전을 짓고 진영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쪽 초입에 있는 비석의 주인공 진감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감국사는 혜소선사라고도 하는데

804년(애장왕 5)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810년(헌덕왕 2) 당나라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이땅으로 돌아와 이곳 서방산 기슭에서 참선하고 실천적 선수행을 통해 독자적 선사상을 형성하였습니다.

(통상 종남산인근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어느 불교 자료에는 그 종남산이 중국 종남산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 후 혜소스님은 상주(尙州) 장백사(長栢寺)에 주석하였다가 하동 쌍계사를 개창합니다.

 

스님은 불교음악인 범패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였고

중국으로부터 차나무를 들여와 차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분으로

하동쌍계사에는 고운 최치원이 쓴 진감국사 대공영탑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이 스님의 진영은 쌍계사와 하동 쌍계사와 상주 남장사(南長寺)에 봉안돼 전해오고 있으며

두 절에서는 계속 이 스님과의 연관성을 널리 내세우는데 

국내로 들어와 가장 먼저 수행하였다는 이곳 서방산 기슭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범패시조 진감국사 유적비라고 쓰여진 쓸쓸한 비석하나 서 있습니다.

 

임도 오른편으로 안내판이 하나 서 있습니다.

 

순례길과는 상관없는 완주군에서 만든 둘레길 표지입니다.

 

그래도 내가 어디있는지는 알게 해주고

지금이라도 되실봉이나 서래봉쪽으로 가려면 마음을 정하라고 합니다.

 

느바기가 빨리오라고 하고

 

서방산도 계속 친구해주겠다고 하니

못이기는 척 하고 임도를 계속 따라갑니다.

 

계곡너머로 서방산 기슭을 따라 오도재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서래봉이 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돌계단을 올라가면 서래봉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오려나?

 

돌계단은 관심없으니 패쓰..

 

 

 

 

빙글

 

또 빙글

 

 

 

 

또 또 빙글

 

 

 

정면으로 한시간전쯤 지나온 오성제가 보입니다.

 

한장 더 꾹

 

아래쪽 길은 걸어온 길

윗쪽 길은 걸어갈길

 

윗쪽길과 쭈욱 연결되어 산을 깍은 길은

아마도 위봉산 정상 북쪽을 지나 수만리로 가거나

동상저수지로 갈겄이고

 

동상저수지물은 대아저수지를 지나 만경강과 연결될 것이고

 

그 만경강은 독촉골다리에서 나와 만나

한동안 함께 흐를 겁니다.

 

구절양장 꼬불꼬불한 길에서

꼬불꼬불한 강을 생각합니다.

 

 

 

 

굿바이 소양면

 

 

굿바이 종남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올라온 굽이길을 굽어봅니다.

 

 

굿바이 서방산

 

 

 

 

요앞 커브에서 왼쪽으로 들어갑니다.

 

고산면 양야리, 양지뜸으로 넘어가는 오도재입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다섯 성인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개..

오도재.

 

꼬불꼬불 같은 곳을 계속 보다가 열이 났던 가슴을 식히고

아 그래도 길은 산을 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까는 둘레길 안내도

이번엔 등산 안내도

 

도는 도인데 말그대로의 길도만 깨우치고

그래도 무언가 깨우쳐 보려고 주변을 둘레둘레 둘러보니

누군가가 세워놓은 솟대가 있습니다.

엄청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엄청 고마웠습니다.

 

하늘로 올려보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

하늘과 가까운 이곳 오리들이 풀쩍 뛰면 바로 하늘에 닿을 듯 합니다.

 

그런데...

나무 가지들이 말라있습니다.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 집니다.

그래도 세운 사람의 바램이 하늘에 전해질때까지는 이자리에 있어주길 바래봅니다.

 

간절함은 결국은 이뤄진다고 믿고 임보선의 시 솟대를 응원가로 읊어 봅니다.

 

"눈에 담고 맘에 담고 혼자 매만지며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하늘 길이 열린다
멀어진 소식 가득 희망 띄우고
돌아오지 않는 안부 가슴 기다리는 길
하늘 향해 지쳐 흩어지는 열기처럼
공중으로 흔적 없는 깃발만 전설같이 꽂혀 있다.
꽂혀 있다."

 


Antonio Vivaldi. Viola D'amore Concerto in A minor, RV.397


Catherine Mackinto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