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섬진강 구담마을에서 장구목까지

하늘타리. 2012. 11. 19. 20:54

전주 공설운동장에서 우리땅 걷기 팀을 기다립니다.
9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이른 아침 길을 나서 7시부터 찬바람속에 서 있다가

수영장으로 들어갑니다.


수영장에서 나오면서 본 탑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나선 지역민들을 기린 탑입니다.

 

모이고...
버스를 타고...
갑니다.

 

 

 

 옛날 두치강(豆治江)이라고 불리우던 강 하류

두치진(豆治津) 나루터에 마을 치닥거리로 근근히 살아가는 처녀가 있었답니다.

이 처녀가 어느 날 저녁밥을 짓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두꺼비 한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와서 큰 눈자위를 껌벅이며 쳐다보더랍니다.

처녀는 그 두꺼비가 자기처지같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꺼비한테 밥을 주고 두꺼비집을 만들어 주었더니

두꺼비가 그 안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이 두꺼비가 처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산 지 3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의 밤.
강 상류에 홍수가 나서 온 동네가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잠을 깨어 둘러보니 사람과 가축은 물론이고 집까지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처녀도 둥둥 떠내려가며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질렀지요.

그때 기르던 두꺼비가 나타나 허우적거리는 처녀 앞에 등을 내밀었습니다.  

 처녀를 메단 두꺼비는 있는 힘을 다하여 강기슭을 향해 헤엄쳤고

 천신만고끝에 강기슭에 도착하였지만 두꺼비는 진이 빠져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처녀는 강기슭에 두꺼비를 묻어주고 매년 제사를 지내주었습니다.

 

이 말이 인근에 퍼지자

인근 사람들은 그 처녀가 두꺼비를 타고 도착 한 곳을 두꺼비나루라는 뜻으로 섬진(蟾津)이라 부르고,

강은 섬진강(蟾津江)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안군 백운면의 데미샘이라는 작은 샘에서 출발 남도 오백리길을 아우르며 흘러가는 섬진강

 

그 섬진강이 옥정호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구비구비 흘러가는 물길을 볼 수 있는 곳
전북 임실군 덕치면 천담리에 있는 구담마을로 갑니다.

 

 마을 앞으로 강이 흐르니 강 마을이고, 산에 기댄 마을이니 산골 마을이기도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이름을 기러기 안자에 못담자를 써서 안담[雁潭]올이라고 하여

마을정자에도 안담올정이라고 써놨는데

 

 굳이 행정에서는 구담마을이라고 부르며 그 이유가 마을 앞 강가에 9개의 소가 있다 해서 구담이라고 합니다.

 

 무어라 부르던 관심없으신 10여 가구에 20여명,

그 중 남자분은 할아버지 서너명이고 나머지는 70세가 넘으신 할머니들이 사시는 아주 오롯한 마을입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과 <춘향전>이 이 일대에서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한 눈으로 그린 이야기이지요.

 


이 마을은 4월에 때늦게 피는 매화가 아름답고 6월에는 매실이 아주 탐스럽게 열린다 하는데

오늘은 꽃과 관계없이

섬진강, 약 225km의 물줄기 중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구목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당산목 느티나무 옆에서 바라봅니다.

액자속에 들어있는 한폭의 그림처럼

섬진강 물굽이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강 건너로는 용골산이 솟구쳐 운치를 더합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던 당산나무주변에서 맴돌다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시비가 서 있습니다

강 같은 세월


김용택의 시군요.
이곳에서 걸어서 한시간 거리,

차로는 10분도 안걸리는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김용택
그곳에는 아직도 그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고 시인의 서재가 있다고 합니다.

시를 읽어 봅니다.
 
꽃이 핍니다
꽃이 집니다
꽃 피고 지는 곳
강물입니다
강 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텅빈 마을을 지나며

생각나는 시 또 하나...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
지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

 

 푸나무서리를 지나면 강 이쪽과 저쪽을 건너게 해줄 징검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강가로 내려가며 김용택의 시 한 수 더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어디선가 한가닥 하던 것 같은 덩치도 좋은 너럭바위들이 줄을 맞추어 이어져 있습니다.

 

강건너 용골산에 삼형제 바위가 있습니다.
그 삼형제가 가져다 놓았나 봅니다.

 

 

 이 강변도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미군복 빨래를 해주며 힘겹게 살아가던 창희 엄마는 어느 날 빨래를 도둑맞지요.

미군 하사는 이 일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창희 엄마의 몸을 요구합니다.

결국 동네 방아간에서 몸을 열어줍니다. 

 

넘어와서 뒤돌아본 구담마을

 

길을 건너면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회룡마을 입니다.

 

 

이곳도 여느 농촌마을처럼 빈집이 많습니다.

 

 용골산자락을 따라 섬진강변을 걸어갑니다.

 

건너편 두류봉자락 드므소

 

 

두류봉과 용골산 그리고 그 뒤 무량산 

 

 용골산기슭 슬립지대를 쳐다보며 그 아래를 지납니다.

 

현수교로 올라가서

 

지나온 방향

 

저 뒤 멀리보이는 산이 회문산일까? 

아니다. 저산은 성미산이고 그 뒤에 있는게 회문산일겁니다.

회문산은 산세가 험하고 골짜기가 깊으며

서쪽을 제외한 삼면으로 섬진강과 구림천이 굽이쳐 흐르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그래서 구한말에는 의병들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에는 지리산과 함께 최대의 빨치산 근거지였으며

당시 이곳의 울창한 숲에는 ‘사령트’라 불렸던 전북도당 유격대사령부와

빨치산 간부들의 정치학습장이던 ‘노령학원’이 자리잡았다고 전해집니다.
한때 700명 이상을 헤아렸다는 회문산의 빨치산들은

투구봉 전투에서 국군 토벌군에게 크게 패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요.
결국 1951년 3월 2일 밤에 각기 두 개 조로 나뉘어 소백산맥과 변산반도 방면으로 탈출했고

낙오자들은 이 일대로 흩어졌습니다.

 

 작가 이태가 1988년에 펴낸 실화소설 ‘남부군’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로

 비목공원과 빨치산 사령부의 옛터를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있다고합니다.

 

가야할 방향 무량산 쪽

 

 

 현수교를 돌아나와 현수교를 돌아봅니다.

 

 이 현수교는 순창에서 추진하고있는 섬진강 시골길 생태관광지 조성사업으로 201년10월에 준공되었으며

차량은 통행이 불가능합니다.
길이는 107m, 폭은 2.4m입니다.

 

보습바위 또는 송곳바위라고 합니다.

보습은 농기구를 뜻하는 것이지요.

 

 길을 따라 내려가다 요강바위안내판을 봅니다.

 

강변으로 내려 서서

 

하류쪽을 한번 바라보고

 

현수교를 보면서 

 

요강바위로 갑니다. 

 

 수천, 수만년의 세월동안 강물이 쓰다듬고 어루만져온 바위입니다.
특히 요강바위는  높이 2m, 폭 3m에 무게가 무려 15t이나 된다고 합니다.
강바닥에 있는 바위 무게를 어떻게 아느냐고요?
들어봤기 때문이지요.

 

이 바위는 한때 몇십억을 호가한다하여

실제 중장비까지 동원한 사람들에 의해 1993년에는 도석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도난 후 1년 6개월 만에 마을주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아 이 자리로 돌아와 있습니다.

이 바위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져 왔고

그리 멀지 않은 예전까지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음기가 강한날.. 보름날이 되겠네요.. 이 바위안에 들어가 지성을 들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하여

참 많은 아녀자들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 다섯 명이

토벌대를 피해 요강바위 속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물결바위

 

이 바위의 이름을 붙여보세요.

 

조금 더 내려가면

 이일대를 장구목 또는 장군목이라 합니다.

 누군가의 시

 

장구목
그것은 천년이 아닌
만년,아니 영원의 세계에서
외진 산골 계곡을 열어
장구목 물길을 열고
바위의 속살을 다듬어 부딪히던
푸른 강물의 흐름이었다
물결 한자락 바위에 부딪히며
울음을 울고
구름바위 전설이 될 때까지 흘러내린
비원悲願의 눈물,
장구목에 와서 구름바위를 보면
물결 이루는 바위 이랑마다
불멸의 미소 살아오른다.

 가운데 폭이 좁아져 장구목이라 하던 곳인데

어떤 의미를 붙여 장군목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 지형 서북쪽으로는 용골산(645m)이,

남쪽으로는 무량산(586.4m)이 우뚝 서 있는데

이 두 개의 험준한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형세

즉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 명당이라 하여 장군목이라 한다는데

이 물길은 용골산과 무량산이 마주보고 있는 사이를 지나는 것이 아니고

그 옆을 지날 뿐인데 이름이 조금 무리인듯 싶습니다.

 

용골산 아니 용궐산

용골산도 그 이름이 빈약한 메시지를 전달해

지역주민의 진취적 기상을 꺽고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하여

마을사람과 출향향우들이 국토지리원에 용이 거처하는 용궐산으로 변경을 요구하여

2009년 4월에 이름이 바뀌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습니다.
아마도 용골이라고 하니까 한약방 싸구려약재 용골을 떠올린 것 같은데

용골이라는 것은 용의 척추를 나타내는 말로

특히 큰 배에서는 없어서는 않될 가장 주요한 기능을 하지요.
용골은 배의 가장 앞부분에서 부터 가장 끝부분까지 길게 이어진 뼈대로

이 용골을 기준으로 갈빗대처럼 양 옆으로 배의 구조를 유지하는 뼈대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큰배에는 용골이 있어서 먼바다 항해시에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선인들은 인근지역의 척추가 되는 산이라는 뜻에서 용골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텐데

곡해와 무지로 인해 그 이름을 버렸습니다. 

 

강건너 두류봉

 

그줄기 따라 펼쳐진 풍경

 

  

북소 

 

 빗다만 만두같은 바위가 있습니다.

 

 

 그 뒤 징검다리를 넘어가면

최근에 조성한 마살길 휴양 숙박단지가 있습니다.

 

이 앞을 지나는 강물은 오수천과 만나는 지점까지를 적성강이라 부릅니다. 

 

북소인근 종호(鍾湖)바위

 

 종호는 ‘시객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양씨집안에 누군가는 이 바위에 구멍을 파고 술을 담아 마셨다고 전해집니다만

이 바위 한구석에 길게 새겨져 있는 누구누구부인 누가

이곳에서 남편을 따라 물에 들어 죽은 곳이라고 쓰여 있는 글귀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사진에서 조차 잘 나오지 않네요.

 

무량산자락에 들어서서 뒤돌아 용골산을 봅니다.

 

 방사탑이 세워져 있는 전망대

 

전망대옆 마을권역지도 

 

 

 

전망대 느티나무 사이로 강건너를 봅니다. 

 

 

 강건너 너와집

 

 

 

무량산을 보면서 무량산 기슭을 따라 걷습니다.

 

 

 길 남쪽 평남리 야산을 봅니다
그 위로 보이는 능선이 아마...

 설악산 용아능선의 축소판이라는 남원의 문덕봉 삿갓봉 고리봉을 연결하는 화산능선일 듯 합니다.

다음편에 계속...

 

Christopher Ball-Oboe Concerto
1.Moderato ma vivace

Adderbury ensemble
Paul Arden Taylor (ob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