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제주도의 일본군 진지동굴中 몇곳..

하늘타리. 2011. 12. 15. 17:24

12월 11일 문화유산답사회 답사기록입니다.

 

금년도 마지막 답사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도에 구축한 진지동굴입니다.
갱도진지라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곳에서는 통상 진지동굴이라 하니 저도 그 표현을 따르겠습니다.

 

답사시 안내자가 안내한 곳은

당시 일본 육군 111사단 245연대 지역과

삼매봉 진양특공정진지를 찾아 갔습니다.

 

......

 

진지동굴에 대해 간략히 기술하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패전 기운이 감지되자

연합군의 일본본토로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시켜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연합군과의 강화협상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1945년 2월, 일본방위총사령관은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일본 본토를 사수하겠다는 의지하에서

 연합군의 일본 본토 상륙 가능거점을 7개로 예상하고

 예상지역인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을

결1호에서 결7호까지의 작전지역을 선정하였습니다.

우선적인 거점으로 예상되는 지점인 일본북부 홋카이도를 결1호작전지역으로 하고,

그외 각 예상지역마다 결2호, 결3호.... 작전을 지시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제주도 방어작전인 이른바 ‘결(決) 7호작전’입니다.

이에 따라 1945년 4월 15일 전투 서열이 정해져  제주도에서 작전을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두어

미군과의 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배치하는 등 결전 준비를 진행했습니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데 이어 1937년 중국 대륙에까지 진출한 일본에게

제주도는 중국의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등을 폭격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전략 요충지였습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일본 해군 비행장(일명 알뜨르 비행장)이 건설되어

1937년 8월 중순부터 중국 남부를 폭격하기 위한 도양 폭격 기지로 활용되었지요.
그후 일본의 상하이 점령 이후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는 줄어들었었습니다만

일본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일본본토방어를 위한 거점으로 다시 주목된 것입니다.

 

제주도에서의 결7호 작전 준비는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1단계는 전투 서열이 정해지던 1945년 4월에서 5월 중순까지의 시기로,

제주도 전역을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애월~한림~한경~대정~안덕 등 서부 지역을 주진지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공격 준비 진지대,

조천~구좌~성산~표선~남원 등 동부 지역을 유격 진지대 등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주진지대에는 제111사단,

공격 준비 진지대와 유격 진지대 북부 지역, 즉 제주시와 조천~구좌~성산 지역에는 제96사단,

공격 준비 진지대와 유격 진지대 남부 지역, 즉 서귀포시와 표선~남원 지역에는 독립 혼성 제108여단이 배치되었습니다.

 

 

 

2단계는 오키나와 함락이 임박한 상황에서

제121사단이 추가로 제주도에 배치되는 1945년 5월 하순에서 6월 중순까지의 시기입니다.

미군의 상륙 지점으로 유력시되는 제주도 서부 지역을 남북으로 나누어

남부, 즉 한경~대정~안덕 지역은 제111사단,

북부, 즉 한림~애월 지역은 제121사단,

제주시와 서귀포시 지역은 제96사단,

동부 지역은 독립 혼성 제108여단을 배치하였습니다.

 

(위 2장 한라일보 사진)

 

 

3단계는 오키나와 함락으로 결7호 작전 개시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1945년 6월 25일 이후 시기입니다.

작전 구역은 2단계와 동일하나

서부 지역, 그중에서도 서남부지역인 한경~대정~안덕 지역에 기존 제111사단과 함께

제12포병 사령부, 독립 야포병 제6연대, 야전 중포병 제15연대, 박격포 제29대대 등을 집중 배치시켰지요.

동시에 1945년 7월 말에는 제120사단을 제주도로 진출시켜

주력을 서부 지구의 전면에 배치토록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120사단은 제주도에 배치되기 전에 종전이 됨으로써

실제 제주도에 진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제 58군이 제주도에 창설된 4월 부터 그 해 8월 종전직전까지 4개월 사이에

 무려 7만 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병력이 제주섬에 집결하면서

  제주섬 전체를 요새화 하기 시작합니다.

 

해안부터 중산간지대는 물론 한라산 어승생악에 이르기까지 주요 거점지역에 각종 군사시설이 들어섰고

한라산 허리에는 각 주요 진지를 연결하는 ‘하치마키’라는 군사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 전쟁유적 전문가인 스카사키 마사유키에 따르면

그 당시 일 육군이 제주도에 파놓은 지하 갱도진지의 총길이는 32km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상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섬의 동쪽 끝 성산일출봉을 비롯

 삼매봉, 수월봉, 서우봉, 별도봉 등 해안가의 절벽에는 특공기지가 구축됐습니다.

 

일제 군사시설의 종류는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위장진지·전진거점진지·주저항진지·복곽진지 등 유형별로 4종류의 진지를 구축하면서

본토결전에 대비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결7호작전은 그 준비 단계에서 종전으로 종결되었지만

 제주도와 상황이 매우 비슷했던 오키나와 전투를 보면,

일본군과 미군을 합해 군인 전사자가 8만~15만 명,

 현지 주민 전사자가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그 아픈 역사의 흔적을 보면서

전쟁의 참화가 비켜간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중 오늘 찾은 곳은 111사단 245연대 주둔지역입니다.
제 111사단은 3개 연대, 1만 2천 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으며
243연대는 가마오름 일대
244연대는 세신, 굽은 오름 일대
245연대는 논오름에 지휘부를 두고

단산, 산방산, 다래오름, 군산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곳입니다.

진지동굴을 돌아봅니다.

 

논오름입니다.

 

 

 

 

 

 

 

 

 

 

 

 

 

 

 

 

 

 

 

 

 

 

 

 

 

 

 

 

 

 

 

 

 

 

 

 

 

 

 

 

 

 


단산.

 

 

 

 

 

 

 

 

 

 

 

 

 

 

 

 

 

 

 

 

 

 

 

 

 

 

 

 

 

 

 

 

 

 

 

 

 

 

 

 


다래오름.

 

 

 

 

 

 

 

 

 

 

 

 

 

 

 

 

 

 

 

 

 

 

 

 

 

 

 

 

 

군산.

 

 

 

 

 

 

 

 

 

 

 

 

 

 

 

 

 

 

 

 

 

 


결호작전이 준비되는 시기 일본군의 해상특공병력도 제주에 주둔합니다.
일출봉, 삼매봉, 수월봉해안절벽에는 진양(津洋)대,

서우봉, 별도봉 해안절벽에는 회천(回天)대를 위한 진지가 구축됩니다.

 

이곳 삼매봉에 위치한 해군 특공부대는

다나카(田中)부대로 불리던 119진양대로

약 187명정도의 특공병력과 자살특공정인 진양 5형 26척의 규모였다 합니다.


진양대는 나무합판으로 만든 배에

2백50kg 정도의 폭약을 싣고 상륙하는 함정을 향해 자살공격 하는 것이 주 임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진양정 격납호로 만들어진 진지동굴 12곳을 둘러 봅니다.

 

 

 

 

 

 

 

 

 

 

 

 

 

 

 

 

 

 

 

 

 

 

 

 

 

 

 

 

 

 

 

 

 

 

 

 

 

 

 

 

10번째와 열한번째는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데

어두워 져서 대다수의 사진이 밖에서 찍은 것 입니다.

 

해식동굴하나 꾹찍고

 

 

 

돌아갑니다.

 

 

 

 

 

 

 

60 Variations on Barucaba for Violin and Guitar, Op.14  Niccol Pagan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