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유배길 1코스 2
5월 15일에 걷다 멈춘 추사유배길 1코스 뒷부분입니다.
3코스 거꾸로 걷고
그에 이어 계속 걷습니다.
향교에서 보성까지의 노정이 됩니다.
대정향교
향교는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세운 국립교육기관이다.
대정향교는 조선 태종16년(1416)에 세워졌고 효종4년(1653)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영조 48년(1772)에는 명륜당을, 헌종 원년(1834)에는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추사가 유배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추사는 1846년 훈장 강사공의 부탁을 받아 기숙사인 동재에 “의문당”이라는 현판 글씨를 써준다.
어쩌면 이 글씨는 추사가 유배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살게 해준 제주사람들에게 준 보답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현판은 현재 제주추사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가장 힘들었던 유배시절을 이겨내면서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추사 김정희.
항상 마음속에 의문을 품고 진리를 찾으라는 의문당의 뜻처럼
그는 삶의 어려움을 집념의 정신으로 이겨내는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안내판의 글)
현감 권극종, 현감 장시열, 목사 박장복, 현감 송두옥, 현감 김재호 등의
존성흥학비
세미물
단산 입구를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밭 너머로 산방산이 한 눈에 펼쳐지는 곳에 이른다.
여기서 대정향교로 걸어가다 보면 작은 돌담을 두른 샘을 만날 수 있다.
돌세미(石泉) 혹은 세미물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옛날 주변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곳이다.
단산의 옛 이름인 바굼지오름 아래에 있다고 해서 바곤이세미(把古泉)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차를 즐겨 마셨던 추사는 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유배지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물을 길어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면서,
제주에 유배 온 김정이 팠던 우물이나 창천의 좋은 물을 부러워했다.
그러한 추사에게 세미물은 위로가 될 만한 샘이었다.
추사는 이곳의 물을 길어다 차를 마시며 외로운 심정을 달랬다.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도 추사는 석천(石泉)의 물소리가 그립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예전에는 까다로운 추사도 감탄할 만큼 훌륭한 물이었던 것 같다.
(안내판의 글)
단산과 방사탑
제주 사람들은 언덕처럼 땅 위로 봉긋 솟아오른 것을 오름이라 부른다.
제주는 오름의 왕국이라 할 정도로 300개가 넘는 많은 오름이 있다.
단산(簞山)도 오름의 하나인데, 부드러운 능선을 보여주는 다른 오름과는 달리 뾰족한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마치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고 하여 바굼지오름이라 불렀다고 한다.
거욱대라고도 불리는 방사탑은 마을의 한 쪽에 나쁜 기운이 있다거나 기가 허한 곳에 쌓아올린 돌탑을 말한다.
제주 곳곳에서 이러한 방사탑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도 밭 사이에 세워진 방사탑을 확인할 수 있다.
추사는 유배시절 내내 단산을 바라보며 지냈을 것이다.
추사체의 특징이 괴이한 모습이라는 말이 있는데,
혹자는 단산의 괴이한 모양새가 추사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내판의 글)
큰길로 나왔습니다.
남문지못은 지난번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인성리를 지나 안성리 사무소앞으로 갑니다.
추사유배지 모든 코스의 출발지점으로 왔습니다.
대정현성과
추사관앞을 지나
보성리 마을안길을 지나면서
추사유배길을 마칩니다.